"개발시대 정책 퇴행적 모습" 지적
연초 이명박 대통령의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 이후 정부와 정유업계 간 3개월여를 끈 공방이 결국 정유업계의 ‘백기투항’으로 마무리됐다. 기름값 인하에 따른 정유사 손실은 △SK에너지 2939억원 △GS칼텍스 2477억원 △에쓰오일 1199억원 △현대오일뱅크 1000억원 등 모두 7615억원으로 추산된다.
물가를 잡는다며 기업을 직접 압박하는 정부의 통제가 도를 넘어 시장경제의 기반을 흔들고 기업을 수렁에 빠뜨리고 있다. 특히 이 같은 관치 남발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잡히기는커녕 계속 오르고 있어 애초부터 잘못된 처방이나는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실제로 올 들어 정부는 친서민을 위한 물가잡기라는 명분 아래 석유류·밀가루·설탕 등 일반 소비재는 물론 철강·시멘트 등 산업재에 대한 전방위 인하 압력을 가하고 있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가 본업을 뒤로 미룬 채 ‘기업 때리기’식 물가관리에 나선 것도 모자라 기획재정부·지식경제부까지 가격통제에 가세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직접 통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정재찬 공정위 부위원장은 “과거 70년대나 80년대 물가 단속과 같이 가격을 직접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고 가격담합과 같은 불법적 인상을 방지해 가격안정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크게 다르다. 조순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정부의 물가관리 방식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의 동기를 이해하지만 좋은 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 “그것은 개발연대의 정책이며 장기화되면 큰일”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정부의 직접 물가통제가 개별 기업들의 피해로 이어졌을 뿐 물가는 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미 정유업계는 가격 인하를 결정한 3개월간 팔면 팔수록 손해가 커지는 상황이다.
앞서 한전의 경우 정부의 가격통제로 3년 연속 적자를 보는 바람에 해외 발전소 건설공사 입찰에서 서류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하기도 했다. 또 제당업계는 지난해 국제 원당가격 폭등에도 제품가격을 제대로 올리지 못해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21~63% 줄어드는 극심한 실적 부진을 겪었다.
그러나 소비자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3월 소비자물가는 전년동기대비 4.7% 증가해 지난 1월 4.1%, 2월 4.5% 등에 이어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결국 시장 가격이 아닌 그 어떤 통제 가격도 부작용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재계 관계자는 “애당초 관치로 물가를 잡으려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며 “결국 물가는 물가대로 못 잡고 시장경제원리만 훼손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