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희건 명예회장(사진)의 유지를 받들어 가족장을 치뤘으며, 신한은행은 향후 유족들과 협의하여 적절한 시기에 국내에서 추모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고(故) 이희건 명예회장은 평생에 걸쳐 재일동포의 단합과 민족금융기관의 육성, 발전을 위해 헌신해 왔으며, 한국에서 신한은행을 탄생시켜 금융산업의 선진화에 크게 기여하였고, 민간 외교관으로서 한일간의 각종 교류를 촉진하여 양국의 이해와 협조 증진에 이바지해온 인물이다.
고인은 일제 식민지 시대이던 1917년, 경상북도 경산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열아홉의 나이로 현해탄을 건너가 오사카 한 무허가 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 장사를 시작으로 1955년에 뜻있는 상공인들과 함께 대판흥은(大阪興銀)이라는 신용조합을 설립했으며, 1974년에는 재일한국인 본국투자협회를 설립했다.
이러한 탁월한 경영능력을 바탕으로 보다 광범위하게 모국 경제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1982년 7월에 일본전역에 산재해 있던 340여명의 재일동포들로부터 출자금을 모집하여 국내최초의 순수 민간자본 은행인 신한은행을 설립했다.
이렇게 탄생한 신한은행은 국내 금융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고, 고인은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주도적으로 주주들의 의사를 결집하여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지난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에는 100억엔을 모아 한국에 기부하는 등 고국에 대한 기여도를 인정받아 `무궁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IMF사태 때는 일본에서 ‘국내송금보내기운동’ 등을 주도하며 재일동포들의 조국돕기운동에 앞장서 왔다.
신한은행 회장 당시에는 어려운 경제상황하에서도 주주들의 힘을 결집하여 유상증자를 성공으로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우량선도은행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제도개혁과 선진형시스템을 지속해야 한다는 인식하에 은행의 조직 및 시스템 전반에 걸쳐 변화를 주는 강한 추진력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그의 노력으로 신한은행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우량선도은행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됐다.
“財物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信用을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다. 그러나 勇氣를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
고인이 평소 신한은행 임직원에게 강조한 글귀이다. 짧지만 삶의 지혜가 녹아 있는 글귀에서 묻어나듯 고인은 조그만 점포로 출발한 신한은행을 짧은 기간에 국내 최대 금융그룹으로 키울 수 있도록 신한은행 임직원들에게 업무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금융계에선 고인이 없었다면 오늘의 신한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명예회장의 연륜과 삶의 지혜가 가득한 가르침을 신한은행 임직원이 가슴에 새기고 받들어 오늘날 신한을 국내 최고 금융그룹으로 키울 수 있었다.
특히,1982년 한국의 경제사정이 어려울 때 재일동포들의 애국심에 의해 탄생한 신한은행이 성장하여 2009년 9월에는 일본현지법인 SBJ를 설립함으로써 일본으로 금융을 역진출하는 등 재일동포의 꿈을 실현시켰다.
이러한 업적들을 본받아 신한금융 임직원들은 오늘의 신한에 안주하지 않고 이희건 명예회장이 세운 신한 고유문화인 ‘신한WAY’를 계승, 발전시켜 초일류 금융그룹으로 발전시킬 것이다.
2만3000 여 신한금융그룹 임직원 모두는 신한의 아버지이자 정신적 지주인 이희건 명예회장의 타계에 진심으로 애도를 표하며, 고인이 평소 강조한 고객만족 경영, 주인정신, 파이팅 스피릿 등 강력한 신한문화를 바탕으로 한층 더 성장할 것을 다짐했다.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신한의 역사이자 조국을 사랑한 큰 거목이 졌다”며 “고인의 창업이념을 받들어 전 임직원이 심기일전하여 신한금융그룹을 세계 일류 금융그룹으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서진원 신한은행장은 “대한민국을 사랑한 애국자이자, 국내 금융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한 故이희건 명예회장이 우리 곁을 떠나 무척 슬프다”며 “그분의 신한에 대한 애정과 가르침은 신한인의 가슴에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