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인수전이 채권단의 중재안에도 불구하고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더구나 채권단은 이르면 다음 주 현대차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여서 현대건설 매각 문제는 더욱 더 꼬일 것으로 보인다.
22일 금융권과 재계에 따르면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이 전격적으로 채권단의 중재안을 수용하면 현대건설 매각 문제는 무리 없이 일단락될 수 있다.
그러나 현대그룹이 채권단의 중재안을 수용하지 않고 소송전을 강행하면 현대건설 매각 문제는 장기간의 법정싸움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현대그룹은 이날 양해각서(MOU) 해지 금지 가처분 신청을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 MOU의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해 달라'는 MOU 효력 유지 가처분 신청 등으로 변경하는 서류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는 지난 21일 채권단이 현대그룹에 인수 MOU 해지를 통보함에 따라 기존 MOU 해지 금지 가처분 신청 청구 취지를 주장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현대그룹 측은 "채권단이 현대건설 입찰 제안서와 MOU 조항에도 없는 근거로 MOU를 해지했다"며 "위법한 MOU 해지를 확인받는 본안 소송까지 MOU상 권리가 현대그룹에 있음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24일 오후 2시 추가 심문을 통해 양측의 주장을 들어볼 예정이다.
특히 현대그룹은 이번 심리에서 본안 소송도 제기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사실상 채권단이 제시한 중재안을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은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에서 대출받은 1조2천억원의 성격에 대해 브릿지론(Bridge loan)이라고 종전보다 구체적으로 밝혔다.
현대그룹의 하종선 전략기획본부 사장은 "나티시스은행에서 빌린 1조2000억원은 일종의 브릿지론"이라며 "대형 글로벌 인수·합병(M&A)의 경우에 일단 브릿지론을 얻은 후 재무적 투자자(FI)나 전략적 투자자(SI)와 협의가 완결되면 대출 대신 투자의 형태로 대체하는 것이 널리 행해지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브릿지론은 충분한 자금을 모을 때까지 시일이 걸릴 경우 단기차입 등으로 필요자금을 일시적으로 조달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채권단 관계자는 "당초 우리가 의심한 부분이 대출 계약에 풋백옵션이 포함됐거나 대출자금 성격이 브릿지론이 아니냐는 점이었다"며 "결국 현대그룹 측이 해당 대출금을 브릿지론이라고 밝힌 것은 대출자금에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채권단은 우선 이날 실무자 회의를 열어 주주협의회 일정 등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채권단 내부에서는 현대차그룹과 현대건설 매각 협상을 빨리 재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 이르면 다음 주 초에 주주협의회를 열어 우선협상대상자 안건을 상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채권단은 현대그룹에 '현대상선 경영권 보장' 등의 중재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이행보증금도 돌려주지 않고 현대상선 경영권 보장도 해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소송전에 뛰어들어 봤자 득 될 것이 없다"며 "채권단 입장에서는 현대그룹을 위해 최대한 유리한 제안을 한 만큼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그룹이 중재안을 수용하지 않고 소송전이 현대그룹에 유리한 국면으로 전개되면 채권단은 또 다른 대응방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현 시점에서 일단 채권단이 현대그룹의 소송 전략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은 2가지다.
우선 법원의 결정에 이의 신청을 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채권단의 이의신청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다시 기다려야 하며 법원 판결에 따라 현대그룹이 또다시 본안 소송을 제기, 관련 소송이 줄을 이을 수 있다.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소송전 대신 채권단이 현대그룹과 MOU 해지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 현대그룹에 본실사 기회를 제공하고 본계약 체결 때 부결하는 절차를 밟을 가능성도 크지는 않지만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또 법원이 현대그룹의 손을 들어주면 현대차그룹이 법적 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법정 소송이 진행되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현대건설 매각 작업 자체가 진행되기 어렵다"며 "현대건설 매각이 장기 표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