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2개 조합 중 60곳서 추천 조항 불법·타락선거 조장"
일부 조합 이사장이 법원에 중소기업중앙회 정관 개정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2월 26일 정기총회를 열어 정회원이면 누구든지, 비회원일 경우에도 조합의 추천을 받으면 회장 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돼 있던 기존 정관을 개정, 602개 조합 가운데 10분의 1 이상 추천을 받아야 하도록 했다.
중소기업청은 지난 6월 이같은 중소기업중앙회의 정관 개정을 인가한 상태인데, 개정된 정관에 의해 선거를 치를 경우 현 김기문 회장의 연임이 유력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따라 박상희 전 회장 등 역대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5명은 최근 중소기업청장을 대상으로 정관 개정 인가의 철회를 요구하는 건의문을 제출했으며, 상당수 조합에서도 이번 정관 개정은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독소조항이라는 지적이 많은 상태다. 다음은 박 전 회장과의 일문일답.
-일부 조합 이사장이 개정된 정관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이유는?
▲중소기업협동조합법에 따르면 정관은 투표 방법이나 절차 등을 규정할 수 있을 뿐 후보 자격에 대해 규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난 2월 개정된 정관은 회장 후보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개정된 정관에 따를 경우 회장 선거에 나서려는 사람은 602개 조합 중 60개 이상의 조합으로부터 추천을 받아야 한다.
또한 조합은 회장 후보자를 중복 추천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만일 김기문 회장이 영향력을 행사해 90% 이상의 추천을 받으면 다른 후보자는 아예 선거에 나설 수 없게 된다. 김기문 회장의 단독 출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정관 개정은 갑자기 이루어진 것인가?
▲아니다. 이미 지난 1월부터 정관 개정을 위한 치밀한 움직임이 있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정관 개정 내용을 법률에 명시할 의도로 중소기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반대의견과 여론악화에 직면하게 되자 자진 철회했다.
하지만 정관 개정이 법률 개정 사안이 아니라 중소기업청에 인가를 받으면 되는 사안임을 알게 되면서 6월 최종 인가를 받게 된 것이다.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사람들은 누구인가?
▲고종환 제유공업협동조합 이사장, 김남주 광주·전남광고물제작공업협동조합 이사장, 그리고 박상건 철강공업협동조합 이사장 등이 참여했다.
이들 3인은 모두 충청, 호남, 서울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은 정관 개정이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등 중소기업협동조합법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정관 개정에 따른 또다른 문제는?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선거공고 이후 후보 등록까지는 단 21일에 불과하다. 전국 602개 조합의 10분의 1인 60개 이상 조합의 추천을 받기 위해서는 하루 3개 이상의 조합으로부터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불가능한 것이다. 한마디로 현 회장만 가능하다는 얘기다.
특히 602개 조합 가운데 10분의 1 이상의 추천을 받도록 한 것 자체가 불법·타락 선거를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후보자는 부득이 선거공고 이전부터 추천을 받기 위해 뛰어다닐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602개 조합 가운데 10분의 1 이상의 추천을 받는 게 어려운 일인가?
▲현 회장은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금 추천권과 감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조합들로부터 추천을 받기가 수월하다.
하지만 여타 후보자는 불이익을 우려해 잔뜩 몸을 움추리고 있는 조합을 설득해야 하는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김기문 회장은 현재 국세행정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 되면 국세행정위원회 위원장이나 세정추진협의회 회장 등 국세청과 관련된 직책을 맡기는 한다.
하지만 중소기업에게 있어 세금 문제는 일종의 아킬레스 건인 만큼 김기문 회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국세청이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권력의 배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정관 개정은 올 2월에 이루어졌는데, 왜 지금 문제를 삼는지….
▲사실 개정된 정관은 내년 2월 선거, 즉 차기 회장 선거가 아닌 차차기 회장 선거부터 적용키로 했던 것이다. 김기문 회장은 총회에 정관 개정안을 상정하는 과정에서부터 연임을 위한 행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이에 따라 김기문 회장은 정관 개정이 내년 2월로 예정된 회장 선거에는 적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정관 개정이 특정 후보를 위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 싫다는 것이다.
이는 총회의 의사록에도 기재돼 있다. 결국 김기문 회장은 이 같은 자신의 말을 번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정관 개정이 총회에서 의결됐다고는 하지만 총회 전 공청회를 통한 충분한 고지도 없었다. 이 때문에 일부 조합들은 정관 개정 내용에 대한 내용도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의결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청과 법제처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쟁점 사안이 아닌 부분, 즉 핵심을 빼놓고 유권해석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핵심은 정관 개정 내용이 타당한 것인지 여부인데 정작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문의한 것은 정관 개정을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는 중소기업중앙회에 고문으로 와 있는 이석연 전 법제처장과 상의한 것 같다.
통상적으로 전임 회장이 고문 역할을 해 왔는데, 이들을 배제한 채 전 법제처장이 고문이 됐다는 것 자체 역시 석연치 않다.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자리가 과거 만큼 매력있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의 권한이 다소 약화됐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막강하다.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경제 4단체장 가운데 한 명으로 주요 경제 관련 행사에 참석한다. 이 때문에 대통령과 대면할 기회가 많다.
또한 602개 조합의 사업비 집행에 대한 감사 권한을 갖고 있으며, 2000억원 규모의 소상공인 공제조합과 4000억원 규모의 공제사업기금을 운영하기 때문에 일선 중소기업에 강한 입김을 행사할 수 있다. 최근에는 홈쇼핑 신설에 주요 주주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며, 상암동에 짓고 있는 글로벌지원센터의 경우 원자재 납품처도 추천할 수 있다.
물론 삼성물산이 건설하고 있지만 하청업체를 선정할 때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선거는 예전에도 잡음이 많았는데….
▲사실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선거는 예전부터 과열양상을 빚어온 게 사실이다. 후보 난립과 과도한 경쟁 등으로 부작용이 속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07년 선거에서는 부정선거 시비를 막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관리를 위탁했다. 이처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와 감독 아래 치러진 선거에서는 부정행위가 거의 없어 혁신적인 선거 개선이 이루어졌다는 평가도 받았다.
사실 선거관리를 다른 기관에 맡긴다는 게 조금 이상할지 모른다. 하지만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 차원에서는 가장 바
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소기업중앙회 내부에 선거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자체적으로 선거관리를 한다고 하니 문제가 속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중소기업중앙회의 부정선거감시단은 지역별로 위촉된 46명이 전국 12개소에서 선거를 감시하게 된다. 문제는 이를 중소기업중앙회가 지휘한다는데 있다.
이런 부정선거감시단은 오히려 조합들에 대한 족쇄로 작용해 김기문 회장의 연임을 지원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박 회장은 이번 회장 선거에 출마할 예정인가.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했다. 이젠 나간다고 해도 된다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김기문 회장에 대한 반(反) 연합전선이 형성되고, 연합전선에서 추대한다면 도전해 볼 의사가 있다. 사실 두 번의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을 하면서 어려운 선거를 치렀다.
유언비어는 물론 정치권의 후원을 받는 후보자들과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어려움도 많았다. 하지만 표심은 모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 선거에서 70대 30으로 완승한 적도 있다.
-일부에서는 김기문 회장의 재선을 점치는 분석이 많은데….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은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 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김기문 회장은 공정한 선거제도를 마련해야 하는데도 연임을 위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정관을 개정했다는 의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중소기업중앙회에 대해 평가한다면?
▲중소기업중앙회는 회장을 중심으로 단합하고 중소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중소기업중앙회는 회장 사람들로만 채워져 있어 반대 의견이 수용되지 못하는 등 닫힌 집단으로 전락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과연 누구를 위한 단체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이번 정관 개정은 중소기업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 즉 당선만 되면 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결과물일 뿐이다.
만일 중소기업청이 인가한대로 회장 선거가 치러질 경우 선거에 돌입하기 전부터 심각한 분열과 갈등이 조장될 가능성이 높다.
일부 조합에서는 회장 선거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현행 연임제를 아예 단임제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