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름을 짜내고 고약을 몇날며칠 붙이고 나면 종기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종기가 난 부분의 아픔도 서서히 줄었다. 종기는 한 번 나면 그 뿌리까지 완전히 짜내야 재발하지 않는다. 대충 짜낸 종기는 어느 순간 다시 고름이 차오르며 더 크게 부풀어 오른다.
아프다고 짜내지 않고 놔두면 고통은 지속되고 그냥 둬버리면 병원에 찾아가 수술을 해야한다. 작금의 건설사 구조조정과 흡사한 모습이다.
건설사 구조조정은 지난 2008년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파산 영향으로 전세계에 금융위기가 찾아 왔을 때부터 시작됐다. 1, 2차 구조조정 당시 정부는 각각 11개와 13개 건설사에 대해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통해 회생의 기회를 줬다. 퇴출된 건설사는 5곳 뿐이었다.
정부는 건설사 구조조정이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퇴출보다는 회생에 더 신경을 썻고 건설사들의 건의 또한 최대한 받아들여 각종 혜택을 줬다. 하지만 부실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설프게 짜낸 종기처럼 이들의 부실은 더 큰 규모로 찾아왔다.
6.25전쟁 이후 대한민국 재건의 일등공신이 누구던가. 바로 건설사다. 경부고속도로 등 수많은 역사를 창조해내며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최선봉에 건설사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2010년 현재 건설사는 우리나라 경제의 종기와 같은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
건설사들이 하찮은 존재로 취급받는 것은 그동안 취해왔던 경영 방식 때문이다. 지난 2002년부터 부동산 경기 회복세에 힘입어 금융위기 전까지 승승장구를 거듭하며 이득을 취해왔을 때 건설사들은 기업 규모만 키웠을 뿐 위기관리에는 태만했다.
대형이나 중견이나 할 것 없이 위기관리를 위한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강남불패에 이어 용인불패, 송도불패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성장만을 추구해 왔던 것이 작금의 상황을 만든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위기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변명하고 싶겠지만 이같은 상황은 언제나 찾아오기 마련이다. 외환위기를 겪은 기업이라면 이 정도의 위기는 가뿐하게 넘길 수 있어야 한다. 유독 건설사만 3차에 걸친 구조조정을 하는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이번 위기의 모든 책임을 건설사들에게 떠밀기에는 시장상황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정부가 1, 2차 구조조정 이후 건설사들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줬다면 3차 구조조정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현장에서 느끼는 주택시장 침체가 생각보다 깊은데 주택가격 안정이라는 말로 포장하며 팔장만 끼고 지켜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시장이 다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구조조정만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번 3차 구조조정을 실시한 뒤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한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4차, 5차 구조조정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건설사의 지속적인 붕괴는 한국경제 펀더맨털을 약화시켜 종국에는 더 큰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백해 무익한 종기가 살속에서 다시금 자라날 수 없도록 완벽하게 뿌리를 뽑아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고름을 짜낸 자리에 새살이 돋아날 수 있도록 상처 치유를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