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띠 샐러리맨의 새해 포부] STX팬오션 조양진 운항2팀장

입력 2009-12-2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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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회사는 고기 잡는 회사 아닌데…”

STX팬오션 부정기선영업1본부 운항2팀은 23일 서울 신촌에 있는 한 ‘멀티방’에서 올해 송년회를 갖는다. “허심탄회하게 지난 1년을 정리하자”는 조양진(36)팀장의 제안에 팀원들이 흔쾌히 찬성해 멀티방을 4시간 동안 사용하기로 했다. 2년차 팀장이 팀원들에게 다가서는 방식의 하나이다.

▲STX팬오션 부정기선영업1본부 운항2팀 조양진 팀장.

멀티방은 DVD, PC방, 노래방, 보드게임 등이 갖춰져 있어 최근 연인들이나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뜨고 있는 이른바 종합놀이방이다. 이곳에서라면 팀원들이 즐겁게 놀면서 그동안 업무 외적으로 못했던 이야기들도 자연스럽게 털어놓을 수 있을 듯하다.

조 팀장은 지난해 STX팬오션 운항팀에서 첫 번째 여성 팀장이 됐다. 2004년 STX그룹으로 합병된 범양상선 시절부터 12년 동안 한 우물을 판 경력을 회사가 인정한 것이다.

지난해 이맘때 조 팀장은 서울의 한 호텔방을 빌려서 팀원들과 송년모임으로 이른바 ‘파자마 파티’를 했다. 함께 이야기하고 잠도 자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더 좋은 팀워크가 갖춰질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이색적인 송년회에 반응은 좋았지만, 8명의 팀원 중 2명을 제외하고는 자정을 전후해 집으로 귀가했다. 파자마 파티의 하이라이트인 ‘아침에 생얼(?) 보기’가 완성되지 않은 셈이다.

조 팀장은 “우리 팀은 교감이 특히 중요하다”며 “같은 배를 탔으니까, 팀장이 보고 있는 곳을 같이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멀티방 송년회는 팀 캐릭터를 중시하는 조 팀장의 ‘참신한 아이템’과 ‘팀원들의 귀가 욕구’가 타협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운항팀의 업무는 영업팀에서 화물과 배를 각각 잡고난 후 화물의 적재 및 운항경로 결정, 연료수급 등 STX팬오션의 고객서비스를 총괄하는 일이다. 배와 화물이 계약된 이후 일련의 과정이 모두 포함돼 있다고 보면 된다.

“한국이 IMF에서 구제 금융을 신청한 직후인 1997년 12월 입사가 확정됐을 때 한 친구는 ‘해운회사가 뭐야? 고기 잡으러 다니는 거야’라고 물을 정도로 주위에선 운항업무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지만, 조 팀장은 “1인 맨파워가 중요한 업무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그는 “12년 동안 업무에 대해 단 한 번의 후회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외국, 특히 유럽 고객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일이어서 (시차로 인한) 야근을 피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한길로 올곧이 달려 온 것이다.

조 팀장은 “개인의 권한과 책임 많은 일이라 팀원들 개개인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고 했다. 팀원 한명이, 더 경제적인 방법이 있었는데 그 것을 하지 못했다든가 클레임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는 경우 불이익은 회사 전체로 돌아온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조 팀장은 팀원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고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는 ‘당위’를 이야기했다.

그는 “제 식구가 잘 못한 것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엄청난 과오를 했다 하더라도 제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담담히 말했다. 다행인지 아직까지는 조 팀장이 책임질 팀원들의 사고는 없었다.

실상 이 같은 마음가짐은 선배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는 “입사 첫 해에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쳤는데, (당시) 팀장이 몸을 던져 막았다”고 어제 일처럼 뜨끔한 표정으로 말했다.

“팀장님이 제가 2년차 때 점심 식사하고 같이 들어오면서 지나가는 말로 ‘일 잘한다는 소문이 나한테 안 들려’라고 한 마디 했는데, 그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고 되새김질 한 말은 그가 남들보다 앞서 팀장직을 수행하게 된 배경이 됐다. 조 팀장은 그 후 해운법과 계약 등 업무에 대한 나머지 공부(?)까지 제 일처럼 했고, 이제는 후배들에게 그 경험을 전달하는 위치에 섰다.

입사 2년차를 “오기에 받쳐서 일을 하는 것이 발동된 첫 해”였다고 정의한 그는 “만12년을 일하고 나니 매너리즘에 빠지게 됐다”고 현재를 점검했다. 그래서 그는 내년을 ‘기본으로 돌아가는 해’로 설정하고 ‘초심을 회복’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현업에 배치돼 일을 시작한 해(1998년)도 범띠 해였어요. 내년에는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임할 생각입니다”. 물론 쉽지는 않을 터이다. ‘첫 입사’때의 기억은 어제처럼 생생하겠지만, 후배들로부터 오는 하루 수백 건의 업무진행 보고에 코멘트를 줘야 하는 3년차 팀장이기 때문이다.

다만 ‘초심의 회복’이 신입시절의 반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 무모한 도전, 땀방울과 같이 처음 시작하는 사람의 패기를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조 팀장의 새해 결심은 실현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무엇보다 “한 번 시작하는 일에 대해서는 몰두를 하는 편”이라고 자신을 평가하는 그가 “초심이 지금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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