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지급결제 허용 놓고 '진통'

입력 2009-10-19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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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증권 소리없는 전쟁...보험사와 갈등 심화

금융권이 소액 지급결제 허용여부를 놓고 또 한 번 진통을 겪고 있다.

이미 지급결제가 허용된 증권업간의 갈등 논란은 어느 정도 잠잠해졌지만, 소리 없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제2의 파장을 예고하는 보험사간의 힘겨루기는 여전한 눈치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종합자산관리계좌(CMA)를 놓고 한동안 갈등을 빚은 은행과 증권사간의 소리 없는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은행들이 증권사에 빼앗긴 고객을 되찾거나 충성고객을 만들기 위해 잇따라 예금금리를 인상하고 나선 것.

이에 따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수개월 째 동결됐는데도 불구하고 양도성예금증서(CD)가 급등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결국 금융권의 기 싸움에 주택담보대출자들의 이자부담만 늘어난 꼴이 됐다.

전문가들은 일단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은행과 증권업간의 지급결제 허용에 대해 증권사들이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고 평가하고 있다.

5%가 넘는 고금리와 증권사의 공격적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종합자산관리계좌(CMA)의 초반 성적이 부진하기 때문이다.

CMA잔액은 지난 달 23일 기준 39조2962억원으로 전월말에 비해 오히려 1.28% 감소했다. 계좌 수는 943만개로 증가 추세지만 잔액 증가는 미미한 편이다.

증권사들이 CMA 판촉을 강화하면서 가입계좌수는 늘었지만, 실제로 CMA로 월급통장을 옮긴다거나 하는 고객은 많지 않다는 뜻이다. 최근 증권사들이 CMA 광고를 늘리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현재의 실적은 기대 이하다.

◆은행-보험 시스템 혼란 VS 보험소비자 편의

은행권과 증권사 간의 갈등을 부추겼던 각종 수수료 문제도 여전하다. 은행권은 자동화기기(CDㆍATM) 이용시 ATM보유 대수에 따라 증권사에 차등수수료를 물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렇다고 은행들이 환호할 만한 입장은 아니다. 치열한 경쟁에 맞서기 위해 고금리 예금을 선보였지만, 이탈한 자금이 다시 몰려드는 머니무브(자금 대이동) 현상이 없었고 이자만 빼먹고 사라지는 이른바 체리피커(과실만 따먹는 소비자) 족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특히 전체 일부 효자 예금상품에도 불구하고 전체 예금은 크게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저축성 예금을 보면, 국민·우리·신한·하나·외환 등 국내 상위 5개 시중은행들은 지난 8월 말 354조7384억원에서 9월 말 358조4896억원으로 증가했다가 6일 현재 356조3601억원으로 감소했다.

하나은행이 지난달 초 출시한 369정기예금은 가입 후 3·6·9개월째 예금을 해지해도 당초 정해진 고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19영업일 만에 판매액이 1조원을 넘어 6일 현재 1조2562억원이나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 은행의

저축성 예금 잔액은 지난 8월 54조882억원보다 5000억원 가까이 감소했다. 이는 고금리를 주는 369정기예금에 몰린 고객 중 상당수가 하나은행 기존 고객이었고, 은행이 당초 기대했던 신규 자금 유입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자가 낮다고 판단한 고객들이 예금을 인출해 다른 금융회사 상품으로 옮겨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은행이 지난달 출시한 ‘자전거 정기예금’은 높은 금리와 함께 자전거 상해보험 무료 가입 등으로 인기를 끌었으나 전체 예금 잔액은 4조원 넘게 줄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과 증권사의 과당경쟁은 이미 소액지급결제 제도가 허용될 때부터 예고된 일”이라며 “고객들이 보다 다양하고 입맛에 맞는 금융상품을 선호할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결과적으로 대출자들에게는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가 허용한 한 만큼 이러한 요소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제안이 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해 11월 입법 예고된 보험사의 기 싸움도 치열하다.은행장들이 직접 나서 은행 이외에 금융회사에 지급결제 기능을 허용하면 금융시스템을 흔들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보험사들은 보험소비자들의 지급결제 편의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신동규 은행연합회장은 기자간담회에 직접 나서 “은행 이외의 금융회사에 지급결제 기능을 주는 것은 금융시스템을 흔들 수 있는 문제”라며 “전세계적으로 보험 지급결제 사례가 없는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이달 초에는 시중은행장들과 함께 김영선 위원장 등 국회 정무위원회 의원들을 만나 보험사 지급결제 불허 논리를 설파했다.

은행들은 금융실명제법 적용을 받지 않는 보험이 수시입출금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자금세탁의 우려가 있고 예탁금 등 필수 법률근거가 보험업법상에 존재하지 않아 허용근거가 모호(시행령 위임)하다고 주장했다.

◆종합서비스 가능하지만 '과장경쟁' 문제해결 시급

또 보험사가 사실상 예금과 유사한 보험상품을 내놔 금리경쟁에 나설 경우 보험사 건전성이 저해될 수 있으며 현재도 보험료는 수수료 부담없이 은행계좌로부터 보험사로 자동이체되고 있고 보험금도 불편없이 입금돼 허용 명분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반면 보험사들은 보험소비자들의 지급결제 편의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또 정부가 이미 국무회의까지 거쳐 법안을 제출한 만큼 정책적 판단도 끝났다고 보고 있다.

보험사들은 보험소비자들의 지급결제 편의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또 정부가 이미 국무회의까지 거쳐 법안을 제출한 만큼 정책적 판단도 끝났다고 보고 있다.

보험연구원은 종합적인 고객 자산관리서비스를 제공해 소비자 효용을 높이려면 보험 지급결제서비스가 필요하며 고객 자산을 관리하는 금융회사 중 은행과 저축은행, 금융투자회사 모두 가능한 서비스를 보험만 막는 것은 형평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또 예탁금 제도의 경우 보험사가 은행에 필요자금을 예탁해놓을 계획이어서 증권금융에 예탁해두는 증권사에 비해 더 안전하고 국회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보험업법에 근거조문을 추가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소모적 논쟁은 피해야 한다며 보험업계에 힘을 더 실어주고 있다. 무엇보다 때늦은 논란이 불거져 보험산업 전반을 개혁할 기회를 놓칠까 우려하고 있는 모습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공식 정부 법안으로 개정안이 제출됐으므로 소모적인 은행-보험간 논쟁은 적절치 않다"며 "본래 취지대로 국회에서 처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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