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기업 경쟁력 좀먹는 ‘워라밸 타령’

윤기설 한국좋은일자리연구소장ㆍ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

한국 실근로시간 OECD 평균 근접
생산성 낮은데도 주52시간제 고집
‘근로시간 유연화’에 노동계 각성을

어느덧 우리나라 연간 근로시간이 1800시간대에 진입했다. 2023년 1인당 평균 근로시간이 1872시간을 기록,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대선 때 공약한 ‘1800시간대 진입’이 임기 다음해에 달성됐다. 2017년 1996시간이었던 근로시간이 6년동안 124시간 줄어들면서 우리나라는 장시간근로 국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있다.

더구나 장시간 근로자가 많아 국가 전체의 평균 근로시간을 끌어올린 자영업자의 높은 비중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로 계산할 경우 실제 임금근로자의 근로시간은 60시간 이상 낮아진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 결과도 있다. 이렇게 되면 OECD 평균(1742시간)과의 격차는 더 줄어든다.

사실 자영업자의 높은 비중은 우리나라가 장시간근로 국가라는 통계의 함정에 빠지게 만든 요인이었다.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중은 2022년 기준 23.5%로 일본(9.6%), 프랑스(13.1%), 미국(6.6%), 독일(8.7%) 등에 비해 훨씬 높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실시한 근로환경조사에서 자영업자의 주 60시간 이상 장시간근로 비중은 2022년 기준 14.5%로 상용근로자(1.9%)나 임시근로자(1.8%)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높은 자영업자 비중이 우리나라의 연간근로시간을 끌어올린 셈이다. 하지만 노동계와 더불어민주당은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 채 현장 근로자들의 과로가 걱정된다며 주 52시간제 유연화에 강력 반대해왔다.

경직된 근로시간은 생산성 저하를 부추겨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2022년 기준 시간당 50.09달러로 미국(82.51달러)의 60.7%, 독일(83.79달)의 59.7%, 프랑스(81.65달러)의 61.3% 수준에 불과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유연근로는 필수다. 일본(50.54달러)이 노사자율을 통해 장시간 근로를 허용하는 것도 낮은 생산성을 보완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일본은 노동기준법상 연장근로한도를 월 45시간, 연 360시간으로 제한하지만 업무량이 몰릴 땐 월 100시간, 연 720시간까지 허용한다. 우리나라 월 한도(52시간)의 2배 수준이다. 또한 연 수입 1075만 엔 이상 받는 연구개발인력, 첨단기술엔지니어, 금융애널리스트 등 고도의 전문 지식노동자는 화이트칼라면제(연장근로수당 제외) 대상으로 연장근로한도가 없다.

다른 선진국들도 탄력적이고 유연한 근로시간 운영을 통해 글로벌 전쟁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일본과 함께 반도체 패권을 다투는 미국 대만 중국 등은 일하고 싶은 만큼 일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세계 초일류기업이 몰려 있는 미국은 연장근로한도가 없고 노사가 합의하면 언제든 주 80시간이 가능하다. 또한 주급 684달러 이상의 행정직 관리직, 전문직, 컴퓨터직, 외근영업직과 연소득 10만7432달러 이상 고액 연봉자는 화이트칼라면제 대상이다.

대만은 월 연장근로 한도가 46시간으로 우리나라보다 6시간 짧지만 일감이 늘어날 경우 노사합의를 통해 필요한 만큼의 연장근로를 허용한다. 이런 제도를 통해 TSMC는 하루 3교대로 쉬지 않고 공장을 돌리며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중국 역시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하는 것을 의미하는 ‘996’관행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장악해가고 있다.

글로벌 경제 시장은 빛의 속도로 변하는데 우리나라 노동계는 이념적,수구적 아집에 사로잡혀 유연근로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킨다. 지금 현대 삼성 LG가 세계기업으로 성장하고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출시할 수 있었던 것은 장시간 근로가 허용되던 시절 밤낮없이 연구개발에 매진한 성과다. 경직적인 주52시간제가 운영되었다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K엔비디아’의 등장을 바란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주52시간제 예외적용을 담은 반도체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기업경쟁력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모르는 것 같다. 엔비디아는 미국의 다른 초일류기업과 마찬가지로 노동강도가 세기로 유명하다. 일주일 내내 한밤중까지 일하는 경우도 많다. 경직된 근로시간을 유지하면서 최고 기업의 탄생을 바라는 것은 공허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AI시대 기업이 성장하려면 근로시간 유연화는 필수조건이다. 노동계와 민주당처럼 워라밸과 건강권만 고집해서는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자영업자를 제외하고 우리나라 대부분의 임금근로자들은 장시간근로에서 벗어난 상태다. 노동계는 반대만 일삼는 수구적인 행태에서 벗어나 국가경제를 생각하는 진보적 경제관을 가질 때다. 그래야 ‘왜 소를 키워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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