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 칼럼] “다만 영원한 국가 이익이 있을 뿐”

주필

트럼프 관세전쟁에 중국 맞불관세
무역질서 파국불사에 시장 초긴장
한국도 철저히 국익중심 대처해야

벚꽃이 14일 폭격을 맞았다. 봄비·봄눈의 폭격이다. 날씨 예보는 ‘전국 대부분 지역에 비 또는 눈’이다. 앞서 전날 벚꽃길로 유명한 서울 여의도 윤중로에 눈이 내렸다. 이래서는 벚꽃이 견디기 어렵다. ‘벚꽃엔딩’이다. 꽃샘추위가 이렇게 무섭다.

지구촌을 연결하는 무역도 폭격을 맞았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터뜨린 관세 폭탄이 일차적 화근이다. 미국·중국 간 통상전쟁으로 즉각 비화했다. 주요 2개국(G2)의 전면전이다. 총칼을 든 것은 아니지만 자못 흉험하다. 전 세계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실로 험악한 국제경제 기상도다.

중국 국무원은 12일부터 미국산 수입품 관세율을 125%로 상향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대중 관세율을 145%로 올렸다. 양국은 트럼프 1기 때도 관세전쟁을 벌였다. 이번은 리턴매치인 셈이다. 문제는 충돌 강도다. 1기 때 양국은 25% 관세 수준에서 줄다리기를 했다. 이번엔 다르다. 대뜸 100% 넘는 장벽을 설치했다. 상품 무역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식의 치킨게임이다.

중국은 125% 카드를 공개하면서 “미국이 향후 관세를 추가로 인상하더라도 중국은 무시할 것”이라고 했다. 에스컬레이터 대응은 없다는 발표였다. 유화 제스처는 아니다. 양국이 부과한 관세 수준으로 미루어 추가 대응은 무의미해서 고려할 필요조차 없다는 얘기니까. 트럼프 진영도 폭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세율을 더 높여 봐야 역시 득 볼 일이 없을 테니까. 봄비·봄눈도 지나치게 내리면 ‘벚꽃엔딩’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가옥이 무너지고 나무가 쓰러진다. 미·중 리턴매치는 어떤가. 선을 넘은 것은 아닌가. 해피엔딩이 가능한가.

양국 충돌의 파장이 환율 전선 등으로 전이되는 조짐도 뚜렷하다.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주의보가 나오는 게 대표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투자 자산으로 꼽히는 미국 국채 금리가 널뛰기하는 것도 심상치 않다. 미국 달러 가치를 말해주는 달러 인덱스는 연초보다 8~9% 하락한 수준에서 출렁거린다. 시장 참여자들이 멀미를 하지 않는 게 용해 보일 지경이다.

위안화 움직임도 초미의 관심사다. 트럼프는 최근 공화당의원위원회 만찬 행사에서 “중국이 관세 영향을 상쇄하기 위해 통화를 조작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중국 인민은행은 달러 대비 위안화 기준환율을 올리고 있다. 환율 상승은 위안화 가치 하락을 뜻한다. 뉴욕 시장의 역외 환율 가치는 더 큰 폭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중국산 제품의 수출 단가를 낮춰 트럼프 관세 폭탄의 부담을 더는 방향으로 위안화가 움직이는 것이다.

시장도 이를 주시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웰스파고는 “위안화 가치 하락 속도가 더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제프리스는 최대 30%까지 위안화 절하가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중국은 트럼프 1기 행정부가 관세 공격을 가하자 10% 이상 환율 절하로 대응한 적이 있다. 1기보다 더 큰 판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보는 것이다.

환율을 건드리는 것은 도박에 가깝다. 환율조작국 지정 등의 불이익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금의 전면 대결 구도에서 중국이 꼬리를 말고 물러설 것으로 예상하기는 어렵다. 중국은 1994년 달러당 5.8위안을 8.6위안으로 단박에 낮췄던 나라다. 저가 상품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현재의 중국은 다른 나라일까. 보고 싶은 대로 봐선 안 된다. 있는 그대로 보고 적절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

벚꽃이 지는 것은 아쉬우나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4월 중순 서울에 눈이 쌓인 것은 1907년 근대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관측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평년 4월 눈 일수는 0. 2일이다. 2020년엔 진눈깨비가 4월 22일에 내렸다. 이번보다 더 늦은 시기의 봄눈이다. 계절의 순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미중 양국의 관세·환율 전쟁도 마찬가지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19세기 아편전쟁 당시 영국 총리였던 팔머스턴 경은 “우리에겐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다만 영원한 국가 이익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19세기 제국들이 그런 철칙을 기준으로 움직였던 것처럼 현재의 G2도 자국 이익을 위해 충돌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역시 눈을 크게 뜨고, 철두철미 국익 중심으로 대처하면 된다. 트럼프가 공표한 90일 관세유예 시한이 다가오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정신을 바짝 차릴 일이다.trala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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