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먹거리 찾기…동종·유사업종 넘어 전 산업으로 확대
적과의 동침이다. 불황기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 돌파와 새 사업 기회를 찾기 위해 강점있는 기술과 노하우를 접목, 시너지 효과 극대화 차원에서 전략적 동맹을 맺는 것이다.
◆'적과의 동침' 급증
그동안 대기업-중소기업간 상생협력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최근 흐름은 대기업끼리 힘을 합치는 것이다. 그동안 기업간 견제 심리로 대기업간 협력은 그리 활발하지 않았지만 생존력을 높이고 호황기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단적으로 재계 순위 1·2위인 삼성그룹과 현대·기아차그룹은 여러 분야에서 협력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자동차용 반도체' 공동개발을 골자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두 그룹은 지난 8월 정부가 예산 지원을 발표한 신성장동력 분야 연구 개발 프로젝트 26개 중 3개에 대해 공동개발을 수행한다.
지난 4월 말에는 현대모비스와 삼성LED가 자동차 전조등용 LED조명과 모튤(부품 덩어리)의 공동개발, 현대차에 적용하기 위한 기술 협력 계약을 맺었다. 세계 차량용 LED 시장 규모는 올해 1조원 정도로 예상된다.
SK에너지와 포스코도 고유가와 기후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석탄을 석유(CTL)와 화학제품원료, 합성천연가스(SNG)로 전환하는 기술 개발에 나선다. SK에너지와 포스코이 축적한 인프라를 서로 공유하면서 상호 협력하기 위해서다.
일부 대기업간 협력 사업은 가시적인 성과도 얻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LG디스플레이는 올 4월 신규 4세대 LCD 운반용 로봇을 공동으로 개발, 국산화에 성공하고 로봇 60여대를 LG디스플레이 파주 공장에 설치키로 했다.
SK텔레콤과 르노삼성은 4월 이동통신과 위치추적 기술(GPS)을 결합해 운전자가 휴대전화로 차량을 원격 제어하고 교통·생활 등 편의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모바일 텔레매틱스' 시범 서비스를 선보였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대기업간 협력이 다른 업종 내 기술을 활용,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주로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힘을 합치기로 한 차량용 반도체의 경우 2011년까지 시장 규모가 300억달러(약 38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될 만큼 성장 잠재력이 크다.
◆동정·유사업종 내 대기업간 협력 늘어
서로 다른 분야에서의 강점을 합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협력뿐만 아니라 같은 업종 내 경쟁관계에 있는 대기업간 협력도 늘고 있다.
단적으로 업종 내 경쟁관계에 있는 LG전자와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공동 협력키로 하고 글로벌 디지털 TV 수신용 칩을 개발에 나선다. LG전자는 자사의 주력 품목인 디지털 TV 핵심 칩 설계를 하게 되며, 삼성전자는 설계된 칩을 제작, 테스트하게 된다.
인터넷 업계에서도 경쟁업체 간 비즈니스 제휴가 활발하다. 포털 다음은 야후코리아와 정액제 방식(CPT)의 검색광고 서비스 제휴를 맺고 있다. 다음에 광고를 하면 야후에도 노출되는 방식이다.
석유화학업계의 경우에는 비용 절감을 위해 대기업간 협력이 늘고 있다. 원료절감을 통한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다.
석유화학회사인 GS칼텍스와 삼성토탈은 지난 2월부터 석유화학제품 잉여 부산물인 유분 공급 계약을 맺었다. 삼성토탈이 GS칼텍스에 연간 7만t씩 공급한다. 삼성토탈의 경우 부산물을 재가공하는 것보다 GS칼텍스에 판매하는 게 수익성이 좋고, GS칼텍스 역시 수입을 대체할 수 있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부터 에쓰오일과 강원도 동해에 위치한 원유 저장소를 함께 사용 중이다.
복득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폐쇄적인 기업 문화로 자칫 경쟁력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다 연구개발(R&D) 비용 확대 등 다른 회사와 협력을 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국내 대기업 중에 세계적 기술을 보유한 회사가 늘면서 제휴 상대를 외국 말고 국내에서 찾을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앞으로 다양한 방식의 협력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러한 대기업간 협력관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상호간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R&D 부문의 협력은 자칫 기술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자동차용 반도체 개발에 나서는 삼성과 현대자동차간 서로의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가 끊이질 않고 있다. 삼성 일각에서는 반도체 기술이 현대로 넘어갈 가능성을 우려하고, 현대차는 삼성이 이번 협력을 통해 다시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 수 있다는 우려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간 협력사업이 점차 확대되는 것은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어 긍정적"이라며서 "그동안 서로 다른 기업문화 등으로 쌓였던 이질감을 빨리 없애고 신뢰를 바탕으로 사업을 이끌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