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야당이 탄핵안 장기전을 예고했습니다.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면서 투표 불성립으로 자동 폐기된 이후 선언한 내용이죠.
이날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처리했으나 재적 의원 300명 중 3분의 2인 200명의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면서 투표 불성립 처리됐는데요. 2004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헌정 사상 3번째 탄핵 표결이었지만, 앞선 두 대통령과 달리 이번 탄핵소추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날 대부분의 국민의힘 의원들은 탄핵안 표결에 불참했는데요. 윤 대통령은 표결 이전에 대국민담화에서 임기 문제를 포함한 정국 안정 방안을 당에 일임하겠다고 밝혔죠. 8일에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가 공동담화문을 발표하며 “대통령의 질서 있는 조기 퇴진”과 “대통령 퇴진 전까지 총리가 당과 긴밀히 협의해 민생과 국정을 차질 없이 챙길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에 야당은 이 발표가 무효이자 위헌이라며 탄핵에 집중할 것이라고 선언했는데요. 이로써 국민의힘이 또 탄핵소추안 표결에 응하지 않아도 당분간 매주 수요일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하고 목요일 본회의 보고하고 토요일 처리할 방침이죠.
매주 토요일 탄핵안 의결은 탄핵이 될 때까지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지인데요. 이 소식에 절망적인 ‘이시국 피해자’들이 등장했습니다.
토요일마다 탄핵안 처리에 나서게 되면 수많은 인파가 서울 여의도와 광화문에 몰릴 예정인데요. 첫 탄핵 표결에 나섰던 7일 ‘탄핵 찬성’을 외치는 인파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였죠. 경찰 비공식 추산 약 10만2000명(최대 15만9000명), 주최 측 추산 약 100만 명에 달했습니다. ‘탄핵 반대’를 외치는 시위 인파도 광화문에 몰렸는데요. 이곳도 경찰 비공식 추산 2만 명, 주최 측 추산은 100만 명이 운집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파가 늘면서 세종대로 9개 차로 중 7개 차로로 집회 장소가 확장됐죠.
특히 시민들이 몰리면서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과 5회선 여의도역은 무정차 통과하는 일도 벌어졌고요. 국회의사당역에서 서강대교 남단 구간 등 국회대로는 전면 통제됐습니다.
문제는 이 사태가 벌어지기 전부터 이날 꼭 여의도를 방문해야 했던 이들이었죠. 바로 결혼식을 앞둔 예비부부와 친지, 지인들인데요. 최소 몇 달, 길게는 1년 전에 잡아둔 결혼 날짜가 하필 12월이었던 겁니다. 누구도 예상 못 했던 탄핵 정국에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는데요. 실제로 여의도역과 국회의사당역 부근 예식홀은 7일 비상이었습니다.
여의도역 A 웨딩홀에서 오후 3시 예식이었던 예비부부와 혼주는 “참석이 어렵다”는 지인의 연락을 수십 차례나 받았는데요. 여의도역과 국회의사당역이 무정차 통과하면서 전역과 전전역에서 내린 하객들이 수많은 시위 인파에 막혀버린 거죠. 자차를 이용한 하객들 또한 인근 도로가 통제되면서 접근이 어려웠습니다. “정말 미안한데 지금 도무지 걸어갈 수가 없다”, “인파를 생각해 1시간이나 일찍 나왔는데도, 사람이 너무 많다”는 전화를 받은 신랑·신부와 혼주는 한숨을 푹 쉬었죠. 실제 이날 여의도역 웨딩홀에서 자녀 결혼식을 진행한 B 씨는 “200명 정도 생각했던 하객이 80명이 왔다”며 “어렵게 도착한 하객도 제시간 입장은 어려웠다. 하필 이날에 벌어진 일이라 당황스럽다”고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태는 또 반복될 예정이죠. 그 기약조차 정할 수 없는 현실인데요. 12월과 내년 1월 예식을 앞둔 예비부부들은 온라인 결혼카페 등에 “12월 토요일 여의도 결혼인데 어떡하죠?”, “메이크업 샵에서 여의도까지 이동도 어려울 지경이에요”, “저는 국회 예식입니다. 정신을 그냥 놓고 있어요”, “이런 걱정까지 해야 하다니”, “저는 광화문 예식이에요. 울고 싶어요”며 현재를 한탄하며 이 사태를 일으킨 이들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한 예비 신부는 “철도파업 때문에 ‘열차 운행 중지’로 지방 하객들이 불참을 통보했는데, 이번 시위까지 겹치며 버스 대절도 하객 초대도 모두 비상”이라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울고 싶다. 예식 마치고 예랑(예비신랑)과 시위에 동참하려고 한다”고 지친 기색을 드러냈는데요. 그야말로 ‘이시국 피해자’가 아닐 수 없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여의도와 광화문 주변 식당들도 연일 ‘예약 취소’ 전화를 받고 있는데요. 여의도는 국회 출입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송년회가 많았는데, 모두 취소됐죠. 여의도에서 단체 손님 대상으로 운영 중인 C 호프집은 “계엄 사태 이후 저녁 손님이 뚝 끊겼다”며 “토요일 예약 손님들도 이동문제 여파로 예약을 취소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7일에는 근처 식당에 노쇼 손님도 속출했는데요. 이들 또한 “지금 이동이 어려워서 식당에 갈 수가 없다”는 전화를 연이어 받았죠. 그야말로 연말 대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계엄 여파는 학생들에게까지 향했는데요. 바로 윤 대통령의 모교인 충암고등학교 학생들이었죠. 충암고는 6일 학교장 명의로 ‘등교 복장 임시 자율화 공지’를 내보냈는데요. 앞서 3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와 해제 사태 이후 충암고가 연관 검색어로 떠올랐습니다.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비상계엄령 충암고 멤버’로 언급되면서부터죠.
이에 충암고는 “학생들이 등하교 중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9일부터 내년 2월 6일(2024학년도 종업식)까지 등교 복장을 임시로 자율화한다”라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배포했습니다.
거기다 9일 충암고 측은 등하교 시간 순찰 강화 요청 공문을 경찰에 보내기까지 했는데요. 이윤찬 충암고 교장은 이날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학생들이) 거리를 다니면서 인근 같은 학교 친구들로부터 많이 놀림을 받고 있고, 교명을 ‘계엄고’로 바꾸라는 조롱까지 받고 있다”며 “지난주 금요일까지 120~130건의 항의 전화가 왔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 등 계엄사태로 거론되는) 선배들은 40여 년 전에 졸업했다”며 “아이들과 만난 적도 없고 교직원과도 단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다”고 악의적인 비방을 멈춰달라고 호소했죠.
급기야 충암고 재학생들도 직접 호소에 나섰느넫요. 충암고 학생회는 1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식 입장문을 내고 "사태 이후 교복 입은 학생에게 폭언하고 취업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하거나 교무실에 항의 전화하는 등 피해 사례가 계속 접수되고 있다"며 "재학생은 대통령 및 논란의 인물들과 전혀 관련이 없으며 무고하다. 충암고는 학교 정상화, 체육관 공사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단 한 번도 특혜를 기대하며 졸업생과 접촉한 적은 없었다"고 밝혔죠. 이어 "부디 충암고와 재학생을 향해 비난하는 일은 멈추고 학생들이 안전하게 자신들의 미래를 꿈꾸고 펼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덧붙였습니다.
40여 년 전 졸업한, 마주친 적도 없는 까마득한 선배와 ‘같은 학교’라는 이유로 아무 죄 없는 충암고 학생들이 피해를 받고 있는 건데요. 교복까지 벗어야 하는 아이들의 상황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난데없는 계엄 여파에 직격탄을 맞은 ‘이시국 피해자’들은 부디 이 사태가 끝나기만을 바랄 뿐인데요. 다른 피해자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부디 모든 과정이 절차대로 법대로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마무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