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올려줘” 급등한 조합-시공사 분쟁에 바빠진 공공… 실효성은 ‘글쎄’

입력 2024-11-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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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파트 공사 현장 (연합뉴스)

고금리와 원자잿값, 인건비 상승 등으로 공사비가 오름세를 이어가자 정부가 도입한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검증 제도를 찾는 조합원이 늘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공사비로 인한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각종 장치를 내놨다. 검증 결과를 수용해야 할 법적 강제성이 없다 보니 실제 현장에선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2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 성북구 장위4구역(장위자이 레디언트) 재개발 조합과 시공사 GS건설 사이 공사비 인상 합의가 결렬됐다. GS건설은 480억여 원의 공사비 인상을 요구했으나 조합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서울시가 200억 원 대의 중재안을 내놓았지만 이 또한 양측에서 거부했다.

조합은 2009년 7월 3.3㎡당 346만 원에 도급계약을 맺은 이후 2015년과 2022년, 지난해 7월 세 차례에 걸쳐 공사비를 49%가량 올려줬으니 더 이상의 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GS건설은 설계사의 파산으로 인한 비용 증가와 원자잿값 상향 조정 등을 이유로 비용 상승은 불가피하다고 맞서고 있다. 이 현장은 내년 3월 준공 예정이라 합의 도출이 늦어지면 입주까지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방 정비사업 현장에서도 공사비로 인한 잡음이 들려오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우동 삼호가든(우동1구역) 재건축조합이 시공사인 DL이앤씨와의 결별을 고려하고 있다. 이곳은 지방 최초 DL이앤씨의 하이엔드 브랜드 ‘아크로’가 적용될 예정이었다.

DL이앤씨가 2021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될 당시 공사비(3.3㎡당 609만 원)를 상향 조정해달라고 요구하며 조합원들의 고민이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30일 총회에서 시공사 선정 무효 취소 안건을 논의하기로 했다.

전국적으로 공사비 갈등이 늘었다는 건 통계로도 확인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맹성규 의원(더불어민주당·인천 남동구갑)이 부동산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신청받은 전국 공사비 검증 건수는 31건이다. 4분기 통계가 미반영된 점을 고려하면 40건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도입 첫해인 2019년(4건)에 이어 2021년 24건, 지난해 25건을 기록하며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부동산원은 올 1~9월 신청서를 낸 31개 정비사업장 중 77%(24개) 현장의 공사비 검증을 마쳤다. 24곳의 시공사가 총 2조4131억 원의 증액을 원했지만 부동산원이 필요성을 인정한 비율은 83%(2조339억 원)에 그쳤다.

지자체 또한 공사비 증액으로 인한 사업 지연을 막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서울시는 2022년 말부터 조합과 시공사 사이 이견을 중재하는 민간 전문가인 ‘정비사업 코디네이터’를 파견하고 있다. 강북구 미아3구역, 성북구 안암2구역 등에서 합의를 하는 성과를 냈다. 6월부턴 리모델링 단지로 역할을 확대했다.

경기도는 지난해 말부터 공사비 분쟁 조정 지원을 위해 법률·회계 전문가를 현장에 파견해 왔다. 각 시·군이 한 달에 한 번 분쟁 현황 등을 파악한 후 도에 요청하면 전문가 지원이 이뤄지는 식이다. 부산시는 부산도시공사를 통 공사비 검증 전담조직을 구성, 자문과 갈등 조정 등을 제공하고 있다.

공공이 제공하는 공사비 검증 제도를 활용하면 재건축 관련 경험이나 전문지식이 조합원들이 직접 시공사와 협의하는 것보다 전문성 높은 합의에 나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합의안이 나오더라도 받아들이는 건 시공사 마음이라는 데 있다. 조합과 시공사 간 시공계약은 민간의 영역이라 공공기관의 중재안은 권고사항일 뿐 법적 효력이 없어서다.

국토부는 ‘재건축·재개발 촉진법’을 통해 갈등을 겪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공공기관 등이 조합 업무를 대행할 수 있는 공공관리인 제도를 신설할 방침이다. 해당 법안은 현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로, 통과 시점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도 공사비 검증을 바라보는 시선이 갈리고 있다. 입주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강력한 중재 기구가 필요함을 강조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계약의 기본은 계약서이기에 건설자재의 수요나 공급망 문제 등 갑작스러운 시장환경 변화에 따른 계약사항을 구체적으로 기재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공사비 검증 제도는 이는 사업시행자가 요청하는 경우에 한하며 검증 결과 역시 실효성이 없다”며 “민간 계약을 공공이 강제·감독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이므로 강제력 있는 중재 기구 마련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공사비 증액이 시공사의 영업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늘어난 원가에 대한 발주자의 보전행위라는 점을 이해하고 시공사 귀책사유 없이 증액 사유가 발생할 경우 이를 인정한다면 분쟁이 줄어들 것으로 본다”며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시공사와 조합이 서로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한 발씩 양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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