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엔드 보장” 해외 설계사 ‘모시기’ 신경전… 설 자리 줄어든 한국 건축사 [평범한 건 NO, 특화설계 경쟁③]

입력 2024-11-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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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반포2차 재건축 조감도. (자료제공=신반포2차 재건축정비사업조합)
최근 다수의 건설사가 정비사업 현장에서 해외 설계사 ‘모시기’에 분주하다. 저명한 해외 업체를 선호하는 조합원의 눈에 들기 위한 일종의 마케팅 전략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국내 주택 특화설계에 미숙한 해외 설계사와의 성급한 협업이 오히려 조합과 한국 건축업계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신반포2차 재건축사업 수주를 위해 세계적 건축 디자인 회사 ‘투포잠박’(2Portzamparc)과 협업한다. 한국 정비사업에서 건축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설계사가 선정된 것은 처음이다.

올 초 여의도한양 재건축 시공권을 따낸 현대건설은 수주를 위해 글로벌 설계 디자인 그룹 ‘SMDP’와 협업해 한강 조망을 극대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SMDP는 용산구 ‘나인원한남’, 성동구 ‘아크로서울포레스트’ 등 다수의 국내 하이엔드 아파트 설계를 담당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해외설계사와 협업으로 입주민들에게 차별화된 주거 가치를 제공하고 국내 프리미엄 주거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립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한남4구역 재개발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네덜란드 설계디자인 회사인 ‘유엔스튜디오’(UN Studio)와 협업하기로 했다. 강남구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 설계를 담당하며 한국에 진출한 해당 설계사는 신반포15차 재건축(‘래미안원펜타스’) 사업에도 참여한 바 있다.

해외 유명 설계사무소와 팀을 이뤄 정비사업에 참여하는 국내 설계사도 늘고 있다. 성동구 성수4지구 재개발 조합은 해외 설계업체 '겐슬러’(Gensler)와 디에이건축, 한국종합건축사사무소로 이뤄진 컨소시엄을 설계사로 선정했다. 중국 상하이 타워, 두바이 국제금융센터 등을 설계한 겐슬러가 국내 건축설계에 최초로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지난해 포스코이앤씨는 경기 안산시 안산주공6단지 재건축 수주전에 참여하며 뉴욕 기반의 글로벌 건축디자인그룹 ‘IDA’와 협업한다고 홍보했으나, 이 회사가 실체 없는 페이퍼컴퍼니라는 의혹에 휩싸였다. 해당 업체 소속 건축가의 경력이 불분명하고 홈페이지도 누구나 무료로 제작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결국 포스코이앤씨는 조합원 안내문을 통해 “최근 언론 보도로 인한 소유주들의 우려가 있어 당초 협업을 진행하고자 한 회사가 아닌 보다 전문화된 해외설계사와의 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설계사 교체 계획을 알렸다.

업계에선 해외 설계사의 정비사업 참여에 마냥 긍정적인 시선이 모이지 않는다. 해외 설계사의 한국 진출이 늘어나면 국내 건축사들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 수 있어서다. 국내 설계사 또한 해외 업체에 뒤지지 않는 특화설계가 가능함에도 단순 홍보를 위한 해외 업체와의 협업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축사는 “해외 설계사가 국내 업체보다 더 일을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며 “한국 건축업계의 세계적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라도 지금과 같은 국내 설계사 배제는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유수 건축가·설계사와의 협업이 단기적인 마케팅 수단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단지를 차별화하고 가치를 높이겠다고 세계 유명 건축가 등과 협업하지만 직접 현장을 챙길 수도 없을 텐데 사실상 기여도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며 "이름값 있는 건축가가 많지 않아 소수에 몰리게 될 것이고 결국 차별화 효과도 오래되지 않아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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