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미의 예술과 도시] 5. 프랑스 파리의 건축유산 ‘청회색 지붕’

입력 2024-02-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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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미 백남준포럼 대표ㆍ이상아트(주) 대표

전세계 관광객에 ‘파리의 색’ 각인
열에 약해…도시온도 상승 논란도

파리건물 70% 덮은 아연소재 지붕
가볍고 방수 좋아 도시미관에 기여
170년간 파리 상징색으로 자리잡아

올해 올림픽을 개최하는 예술의 도시 파리의 색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종종 청회색 색조를 가진 건물 지붕을 연상하곤 한다. 시대를 초월하는 우아함을 선사하는 파리의 도시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이 상징적인 지붕은 도시 건축 유산을 대표하면서 프랑스 역사와 미적 우수성을 증언하고 있다. 파리 지붕의 70% 이상이 아연 재질인데, 파리지앵들은 2014년부터 파리의 지붕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연지붕_사진출처-Adobestock.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대

파리 지붕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청회색 지붕은 역사적, 경제적, 미학적 이유로 아연으로 만들어졌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3세는 파리시장인 오스만 남작(Baron Georges-Eugene Haussmann, 1809~1891)에게 수도의 대대적인 변화를 요청했다. 파리는 오스만의 감독 아래 도시 및 사회 변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새롭게 설계되었고 1853년부터 17년간 3만7500개의 새로운 건물을 지었다. 이른바 오스만 건축 양식의 대대적인 출현이었다.

좁고 구부러진 도로는 일직선으로 곧고 넓게 재편성되었고, 석조 외관, 연철 발코니 그리고 경사진 아연 지붕이 특징인 오스만 양식 건물들은 파리를 현대적이고 위생적이게 개선시켰다. 재료 아연은 사실 오스만 남작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당시 매우 현대적이었던 금속 지붕은 변화에 대한 황제의 열망과 유럽 내에서 최강국이었던 프랑스 수도의 위상을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아연시트는 가벼운 무게로 운송 비용을 대폭 절감시켰다. 19세기 초반까지도 파리는 운송비가 비싸고 무거운 목재를 사용한 지붕이 많았다. 그에 비해 가벼워서 수도로의 운송이 편리했던 아연의 사용은 수천 채의 건물을 지어야 하는 건축주에게는 가성비가 높은 재료였다. 다양한 모양으로 절단 및 설치가 쉬운 아연시트의 높은 가단성 또한 아연의 주요 장점 중 하나이다.

▲파리시 건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청회색 지붕은 빛을 받으면 청색광을 반사하는 아연 소재로 돼 있다. 사진출처: www.toitdeparis.com.
19세기 유럽최강 프랑스 위상 과시

설치하기 까다로운 슬레이트 지붕에 비해 가단성이 높은 아연은 지붕 모양과 경사를 만들었고 파리의 옥상이 모두 다른 지붕의 선을 만들게 해서 도시 건축에 미학적 매력과 세련미를 더한 것이다.

그전까지 파리의 지붕은 슬레이트나 타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는데 예술적 도시 외관을 형성하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또한 건물 구조에 가해지는 하중을 줄였을 뿐 아니라 부식에도 강해서 프랑스의 변덕스러운 폭염과 한파는 물론 곰팡이 등 다양한 기상조건을 이겨내는 데 내구성이 있는 이상적 재료였다. 방수 및 실용성을 갖춘 오스만의 아연 지붕은 최대 100년의 긴 수명을 자랑한다.

미학적으로도 아연은 매력적인 재료이다. 빛에 노출되었을 때 청색광을 반사하는 재료인 아연지붕은 파리시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 매김을 했다. 수년에 걸친 아연 지붕은 시간이 흐르면서 녹청이 끼는데, 파리의 도시 색조를 만드는 이 청회색으로 그 매력을 전 세계 방문객과 현지인들에게 계속 뽐내고 있다.

이토록 문화유산 수호자들의 추앙을 받는 파리의 건축 시그니처인 아연 지붕은 최근 온난화의 원인으로 다른 각도에서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아연은 가벼운 소재이며 방수에 뛰어난 재료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단열과 방음에 취약한 것도 사실이다.

2022년 여름에 발행된 보고서 ‘50도의 파리’에서는 지구 온난화에 대비한 파리의 적응 가능성을 예측하였는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기술 관리자는 아연 지붕의 폭염 증폭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특히 오스만 남작의 대규모 건축물 건설 당시 아연 지붕과 맞닿아 있던 건물 꼭대기의 다락방에 기거하던 빈곤한 사람들이 현재도 추위와 더위로부터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취약계층임을 재차 언급하면서 다락방부터 건물 옥상까지 집중적으로 단열하고 건물 전체를 보호할 것을 권장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직사광선 아래에서 뜨거워진 아연 지붕이 파리 도시 전체를 과열시킨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부 회사들은 건물 지붕부터 외관 전체를 흰색 페인트로 다시 칠하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나폴레옹3세공식초상화_출처 나무위키
지구온난화 대비 ‘파리협정’ 딜레마

이 페인트에 내포된 석회질을 굴 껍질로 대체해서 만든 특수 페인트를 칠하면 6도에서 7도가량 온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언급한다. 다만 이럴 경우 그 페인트가 벗겨져 배수로로 스며들면 굴가루 분말이 토양 및 해양 오염을 일으킬 위험성에 대해서도 간과할 수 없다. 또 다른 방안으로 지붕에 식물구조물을 설치하여 산소 공급량을 늘리면서 대기 온도를 낮추자는 의견도 제시되지만 아연지붕이 식물과 토양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 설치가 불가능하다며 현실을 직시하였다.

2016년 전 세계 각국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겠다고 약속을 하며 ‘파리협정(Paris Climate Agreement)’을 탄생시켰다. 파리협정은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을 2도 아래에서 억제하고, 1.5도를 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목표이다.

물론 아직까지 큰 빛을 발하진 못하는 듯하지만 국제 사회가 기후위기 대응에 박차를 가하도록 동기 부여를 시켰으며, 전 세계가 힘을 모아 기후변화를 억제하기 위한 유의미한 협정임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이런 파리에서 현실적으로 모든 아연 지붕을 교체하여 파리협정에 언제쯤 일조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상황이다. 또한 생태학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지 구체적으로 추정하기도 어렵지만 이 문제를 둘러싼 여러 논쟁 속에서도 파리의 아연지붕은 꿋꿋히 파리 시민과 전세계 관광객들 앞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다. 백남준포럼 대표

유럽문화예술콘텐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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