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어둠을 밝히는 불빛이 되어

입력 2023-08-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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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이륙하자 몸이 가볍게 떨린다. 하늘길조차 막아버렸던 코로나-19의 위력, 하지만 3년이란 긴 어둠의 장막은 걷히고 비행기는 푸르른 창공을 향해 나래를 펼쳤다. 경쾌한 엔진소리, 창틈으로 빗기는 햇살과 발아래 펼쳐진 구름을 지나 시간의 경계를 넘은 우리는 목적지인 캄보디아 씨엠립에 도착했다. 새벽 4시에 집을 나서 오후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한국시간으론 10시가 훌쩍 지난 때다. 짐도 풀기 전에 우리 팀은 로비에 모였다. 내일 있을 진료 준비를 위해서다. 창고같이 잡동사니가 쌓였던 곳은 깨끗이 치워져 진료실이 되었고, 어두컴컴하던 복도는 주인을 기다리는 수십 개의 의자로 채워졌다. 포스터와 안내판이 설치되고 마무리 청소까지 마친 후에야 드디어 일정이 끝났다. 새벽 별빛을 등 뒤로하고 진정한 동남아 더위를 경험한 우리는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러나 여독을 풀 시간은 없었다.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을 무렵 우린 다시 모였다. 사전교육과 장비 세팅을 위해서다. 밀려오는 허기를 바닥에 앉아 도시락으로 때우며 3년이란 시간 동안 우릴 기다려온 분들을 만날 채비를 마쳤다. 캄보디아 전역에서 7시간이 넘게 버스를 타고 모인 분들은 금식한 탓에 지친 기색이 역력해도 오랜만에 한국에서 온 의료진들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함박웃음을 띤 채였다.

약을 구할 수 없는 오지에 있어 6개월 전 처방받은 혈압약을 냉장고에 보관하며 아껴먹던 중년 남자분, 심장질환으로 몸이 붓고 숨이 찼지만 어쩔 수 없이 버텼던 여자분, 그리고 자칫 위험에 빠질 뻔한 담낭질환 환자분. 왜 우리가 먼 길을 날아와 지치고 땀으로 흠뻑 젖은 몸으로 새벽을 밝혀야 했는지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밤을 낮 삼아 진행된 2박 3일의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한 해의 휴가를 반납하고 자비를 들여온 팀원들이지만 비행기 안에서의 모습은 다들 밝다. 올 때보다 더 긴 비행이 우릴 제자리로 돌려놓았지만, 마음은 아직도 캄보디아의 뜨거운 태양 아래 남겨져 있다. 아쉽게 끝난 진료와 정밀검사가 필요했던 분들, 의사조차 만나기 어려운 오지에서 부족한 약으로 버텨내야 할 이들의 얼굴이 떠올라서다.

캄보디아에 의료봉사를 온 후 7년 동안 그곳에 남아 봉사하신다는 소아청소년과 선생님, 그분도 아마 이런 마음을 떨쳐버리지 못해 척박한 그곳을 다시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비행기는 활주로에 착륙했다. 새까맣던 대지가 차츰 아침을 여는 여명의 불빛으로 채워진다. 닫혔던 하늘길이? 열린 이제, 코로나의 어둠을 뚫고 날아가는 의료진들의 사랑의 불빛이 캄보디아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오지를 오늘처럼 또다시 밝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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