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자] 세상에 없던 서비스 어떻게 나오나?

입력 2023-08-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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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설립한 지 6년이다. 2017년 창업한 코드박스는 시작이 수월했다. 블록체인 기술이 한창 떠오르던 시기에 블록체인 기술 회사로 처음부터 여러 벤처캐피털의 러브콜을 받았고 좋은 조건으로 빠르게 투자를 유치했다. 좋은 기술 인력을 모아 잘만 개발하면 모든 게 잘 풀릴 줄 알았다.

기대와는 달리 얼마 지나지 않아 어려움이 닥쳐왔다. 첫 좌절은 다음 투자를 못 받았을 때였다. 미팅 한두 번 만에 신속하게 결정된 시드투자와 달리, 6개월이 넘게 IR을 했지만 후속 투자가 쉽지 않았다. “팀과 기술이 좋은 건 알겠는데, 그래서 돈은 어떻게 벌 건데?” 평생을 엔지니어링만 했던 나는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 했다. 열 곳이 넘는 벤처캐피털이 투자를 거절하자 나는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경쟁력은 ‘생각’ 아닌 ‘경험’에서 나와

처음엔 투자자가 우리 회사의 가치를 못 알아본다고 생각했다. 심사역이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으면서 오픈 소스로 공개되어 있는 우리 소스 코드 한 번 보지 않은 게 불쾌했고, 남의 코드를 가져다 껍데기만 만든 경쟁사가 우리보다 훨씬 빨리, 좋은 조건으로 투자 받는 것도 기분이 나빴다.

똑똑한데도 성장을 못 하는 사람들은 자기 합리화에 능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스타트업에서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빠르게 시도해보고 경험을 바탕으로 개선해 나가야 하는데, 똑똑한 사람일수록 어떤 일을 시도하지 말아야 할 이유, 그 일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내고 합리화하는 데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

반대로 성장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한다. 성장하는 사람은 모르는 걸 질문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질문은 내가 잘 모른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 내 평판을 떨어뜨릴 수 있는 위험한 일이지만, 그래도 질문을 해야만 답도 얻을 수 있다. 질문을 해야 나만 모르는 게 아니라 똑똑한 척하던 다른 사람들도 사실은 다 모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성장하는 사람은 남들이 분석만 하고 있을 때 실제로 뛰어들어 직접 일을 해본다. 실패하면 내 평판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만, 세상 일은 해봐야 알고, 고생과 시행착오 속에 성장하는 법이다. 나만의 경쟁력은 나만 ‘생각’해본 일이 아니라 나만 ‘경험’해본 일에서 나온다.

처음 ZUZU를 만들면서도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주주명부를 꼭 엑셀이나 워드로 관리해야 하는지? 회계 프로그램은 있는데 왜 주주총회 프로그램은 없는지? 상법, 정관, 이사회 유무 등에 따라 바뀌는 서류를 자동으로 만들 수는 없는지? 주주명부 변동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하나의 서비스로 제공할 수는 없는지?

투자혹한기는 기업체질 개선할 기회

우리 말고는 누구도 해본 적 없는 질문이고, 당시에는 바보 같은 질문이었지만 이 질문에 하나씩 답을 하는 과정에서 그전에는 없던 서비스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코드박스가 블록체인 기술 기업에서 주주 관리 서비스로 변신하고, 지금처럼 6300개 기업 고객이 이용하게 된 배경에는 기술 개발에만 몰두하느라 투자금이 바닥나는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 최근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란 말이 많다. 후속 투자에 의존하던 스타트업에 가혹한 시련의 시기이기도 하지만, 비효율을 줄이고 성과 위주로 기업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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