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新다자간 수출통제’ 대비해야

입력 2023-07-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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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경쟁속 공급망재편 급부상
대중의존도 높은 한국엔 큰 부담
안보·경제적 손익 면밀히 검토를

일본 정부가 첨단 반도체 장비 23개 품목에 대한 대중국 수출 통제를 지난 23일부터 시작했다. 세정, 증착, 열처리, 노광, 식각, 검사에 이르기까지 첨단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장치들이 대거 리스트에 포함되었다.

일본의 조치는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산업 견제정책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은 3년 전부터 일본, 네덜란드와 함께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공조를 위해 노력해왔다. 이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다자간 수출통제 체제 구축을 둘러싼 논의로도 이어지고 있다.

기존의 다자간 수출통제 체제로는 △재래식 무기 및 이중용도 품목과 기술의 수출통제에 관한 바세나르체제(WA), △핵 공급국 그룹(NSG), △생화학 물질의 수출통제에 관한 호주 그룹(AG), △미사일 기술 통제체제(MTCR)가 있다. 그러나 이들 체제는 크게 다음과 같은 한계점을 보이고 있다.

첫째, 기존의 다자간 수출통제 체제의 가장 큰 한계는 비확산과 재래식 군사 관련 목표만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군사-민간 융합(MCF: Military-Civil Fusion) 전략, 기술을 이용한 인권 침해, 대규모 중요 공급망 교란, 신흥 기술 통제 등 새롭게 부상하는 중요한 국가 안보 및 외교 정책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루는 데 한계가 있다.

둘째, 합의(consensus)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비협조적인 회원국이 중요한 조치를 중단하거나 지연시켜 체제 전체의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는 문제점이 있다. 셋째, 통제품목이나 기술만을 정의하며, 각 회원국이 자체적으로 라이선스 정책을 결정한다. 즉, 국가 간 일관성 없는 라이선스 정책은 불균형적인 시장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수출통제의 효과적인 집행에도 구멍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최근 주요국들은 대체로 새로운 수출통제를 통한 강력한 공조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다자간 수출통제 체제를 만들더라도 특정 국가를 의도적으로 표적으로 삼고자 한다면 국제적 지지를 얻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국가마다 위협에 대한 인식과 위험 허용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 부상한 디리스킹(de-risking) 논의에서 볼 수 있듯이 EU와 미국도 중국에 대한 인식에 괴리가 있으며, 서로 다른 대중국 전략을 취하고 있다. 23개 품목에 대한 수출통제를 시작한 일본 내에서도 이러한 조치가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은 수출통제를 전략자산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수출통제를 미국처럼 광범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제재와 수출통제는 국가 안보 및 외교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공통점 때문에 많은 경우 혼용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제재는 특정 개인, 단체, 국가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외향적·전략적 목표를 갖는 반면, 수촐통제는 특정 상품과 기술의 수출을 식별하고 제한하려는 내향적·방어적 동기를 갖는다. 여전히 많은 국가들은 수출통제를 비확산 및 재래식 안보 관련 목적에만 한정된 표적화된 수단으로 보고 있다.

수출통제의 광범위한 전략적 활용은 공급망 재편을 수반한다는 점에서도 많은 국가들이 부담을 느낀다. 공급망 재편은 생산거점 이전을 위한 설비투자 비용뿐만 아니라 생산 및 물류 비용의 증가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수출통제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니어 쇼어링(nearshoring)보다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을 가속화할 것이다.

수출통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국가로부터 수출통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없는 국가로 공급망을 이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최근 미쓰비시종합연구소(MRI)의 연구가 지적하는 것처럼 프렌드 쇼어링에 기반한 공급망 운영 비용이 가장 크게 증가하는 국가 중 하나가 한국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 정치체제가 다르고 민주주의지수(Democracy Index)가 낮은 중국이나 베트남에 공급망을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와 기업은 이러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다자간 수출통제 체제 구축 움직임이 더욱 구체화된다면, 우리는 그 논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되 수출통제를 통한 안보적 이익과 경제적 손실을 보다 종합적이고 면밀하게 검토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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