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놀이터]모기의 뜻밖의 취향

입력 2023-05-17 05:00수정 2023-05-1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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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길가에 찔레꽃이 한창이다. 찔레꽃은 앙증맞은 생김새가 예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향기가 대단하다. 개인 취향이겠지만 봄에 피는 향기가 강한 꽃인 라일락이나 아카시아보다 완성도가 한 수 위인 것 같다. 사실 찔레는 장미의 일종으로, 찔레를 가리키는 영어 wild rose를 직역하면 야생 장미다. 참고로 우리에게 익숙한 겹꽃의 장미는 형태에 주안점을 두고 육종한 작품이라 오히려 향은 미미하다.

비누·샴푸향이 모기 끌어들여

찔레꽃 주변을 맴돌고 있는 꿀벌들을 보면서 냄새에 대한 녀석들의 미적 취향이 사람과 같은 수준이라는 게 새삼 놀랍게 느껴진다. 그런데 꿀벌 입장에서는 이런 얘기가 어불성설인 게, 꽃은 사람이 아니라 꿀벌 같은 수분 매개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향을 만들어 내뿜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처럼 고상한 취향을 공유해서일까. 자칫 침에 쏘일 수 있음에도 우리는 벌집이 아닌 다음에야 꿀벌들이 윙윙거리는 꽃밭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꿀벌 생김새도 왠지 귀여워 보인다. 그런데 덩치가 비슷한 곤충인 파리는 우리를 공격하지 않음에도 혐오의 대상이다. 어쩌면 악취 나는 대상에도 끌리는 녀석들의 행동 때문이 아닐까.

모기 역시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곤충이다.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해충인 데다 땀 냄새가 많이 나는 사람에 더 꼬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혐오감이 깊어졌다. 실제 모기는 피부의 열기나 날숨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처럼 사람에게 공통인 신호에 체취라는 개별 신호를 더해 선호하는 표적을 정한다.

때 이른 더위로 한낮 기온이 30도 가까이 오르는 요즘 여름 불청객 모기의 활동도 빨라졌다는 소식이다. 때마침 서울에선 서초구가 방역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15일 ‘모기보안관 발대식’을 열고 본격 활동에 나섰다. 이 모기와 관련해 최근 학술지 ‘아이사이언스’에 뜻밖의 연구 결과가 실렸다. 우리가 매일 쓰는 비누나 샴푸 같은 개인위생제품의 향이 십중팔구 모기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버지니아공대를 비롯한 미국의 공동연구팀은 씻지 않은 피부에 닿은 천(옷 소매에 해당)과 비누로 씻은 피부에 닿은 천을 나란히 두고 모기의 선호도를 평가했다.

▲모기와 꽃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모기도 꽃향기를 좋아한다. 실제 모기는 꽃을 찾아 화밀을 빨아먹으며 수분을 돕는다. 다만 산란기 암컷은 식성이 바뀌어 단백질이 풍부한 동물의 피를 찾는다. (제공 위키피디아)

물로만 씻는 게 모기 쫓는 데 유리

테스트한 비누 4종 가운데 3종에서 비누로 씻은 피부에 닿은 천을 더 많이 찾았고 1종에서는 씻지 않은 피부에 닿은 천을 선호했다. 모기가 선호한 비누 3종 가운데 2종은 꽃향기가 느껴지는 전형적인 미용비누이고 나머지 1종과 모기가 기피한 비누 1종은 ‘천연’ 콘셉트의 향기를 지녔다. 참고로 모기가 기피한 제품은 ‘코코넛과 바닐라 향’이라고 쓴 액체비누(보디워시)다.

연구자들은 천 주변의 공기에 떠도는 냄새 분자를 포집해 종류와 농도를 분석했다. 그 결과 비누로 씻으면 체취 분자 농도가 꽤 낮아지지만, 전체 냄새 분자의 농도는 크게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막 샤워를 마친 사람이 옆에 지나가면 향이 확 풍기는 경험과 일치하는 결과다.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자들은 모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보이는 분자 4종을 골라 ‘유혹 향’을 만들었고 모기가 싫어할 것으로 보이는 분자 4종을 골라 ‘기피 향’을 만들었다. 테스트 결과 유혹 향을 뿌리면 선호도가 훨씬 더 높아졌고 기피 향을 뿌리면 찾지 않았다. 모기와 꽃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모기도 꽃향기를 좋아한다. 실제 모기는 꽃을 찾아 화밀을 빨아먹으며 수분을 돕는다. 다만 산란기 암컷은 식성이 바뀌어 단백질이 풍부한 동물의 피를 찾는다.

우리가 쓰는 비누나 샴푸 대다수가 꽃향기 계열임을 볼 때 이런 제품을 써서 씻고 나면 모기가 더 꼬일 가능성이 크다. 모기는 땀 냄새를 좋아하니까 최대한 없앤다고 비누나 샴푸를 많이 쓸수록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다. 되레 잠들기 전 샤워할 때는 물로만 씻어 체취를 줄이는 게 모기의 주의를 덜 끄는 최선의 방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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