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양곡관리·노란봉투법 공개반대…대통령실 "일방처리 국민 실망"
"쌀 의무매입 영향 크겠지만 대비책 검토 안해"…거부권 상정
"'국회 절차 언급 부적절' 모범답안"…명분 쌓고 야당 자극 최소화
이명박 1·박근혜 2·문재인 0…일괄 거부권보단 일부만 행사할 듯
윤석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추진되는 법안들에 대해 일괄적으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부는 해당 법안들로 인한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기존 정책 집행에 매진하며 사실상 거부권 행사를 상정하고 있다.
민주당은 단독으로 쌀 초과 생산량 의무매입제가 담긴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간호법 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시켰다.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노조법 개정안인 노란봉투법 또한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단독으로 본회의 직회부를 의결할 전망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을 ‘패싱’하고 단독처리 하겠다는 의지다.
윤 대통령은 간호법을 제외한 두 법안에 대해 공식석상에서 우려를 표해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바 있다. 거기다 용산 대통령실에선 한 관계자가 17일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이 관심이 있는 법안과 민생법안이 한 정치세력이나 정당에 의해 여야 합의 없이 일방 처리된다면 많은 국민들이 실망하실 것”이라며 재차 거부권 행사 여지를 남겼다.
윤 대통령이 거듭 거부권 행사 의지를 내비치자 정부에서는 해당 법안들로 인한 정책 변화를 대비하지 않고 있다. 양곡관리법이 대표적인 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본지에 “쌀 의무매입이 도입되면 현재 추진하는 전략작물직불제를 통한 타작물 전환 유도를 최대한 하더라도 한계가 생길 것”이라며 “하지만 정부는 국회에서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 기대하고 쌀 의무매입에 대한 대비책은 정식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에선 거부권 행사 여지를 남기면서도 직접적인 표현은 삼가는 분위기다. 거부권 행사가 불가피한 상황이 될 때까지 말을 아끼겠다는 것이다.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회에서 정치적으로 진행되는 부분은 대통령실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내부 정서가 있다”며 “그래서 ‘국회 절차에 대해 대통령실이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답변을 모범답안처럼 쓰고 있다”고 말했다.
거부권 행사가 점쳐지는 건 윤 대통령이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해왔다는 점에서다. 민주당 단독 본회의 직회부 의결, 나아가 단독 본회의 처리까지 이어진다면 절차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통령실이 '국회 절차가 우선'이라며 해당 법안들이 국회 문턱을 넘기 전까지 거부권 관련 입장 표명을 자제하는 이유다.
이 같은 명분 쌓기 외에 야권과의 지나친 대결 구도는 피하기 위함도 있다. 내년 4월 총선이 다가오는 가운데 정부·여당의 입법 성과가 적어 국정운영에도 차질을 빚고 있는 만큼 야권의 협조가 필요해서다.
2000년대 들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9건에 불과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6건, 이명박 전 대통령 1건, 박근혜 전 대통령 2건, 전임 문재인 전 대통령 때는 한 건도 없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사용하면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때문에 세 법안 모두 거부권을 행사하기보다는 일부는 수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예로 간호법의 경우 윤 대통령도 취임 전 간호사 처우 개선을 언급한 바 있어 받아들일 명분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