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역에 가고 싶다] 소설 ‘태백산맥’과 겨울꼬막, 벌교역

입력 2022-12-0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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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역은 1930년 12월 경전선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벌교역은 소설 ‘태백산맥’에서 이념전쟁으로 갈라섰던 형제가 죽음으로 화해하는 곳으로 묘사되었던 장소로, 벌교천과 칠동천이 만나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오늘날 벌교역은 1987년에 신축된 것으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담아 385.8㎡의 철근 콘크리트 단층 기와 형태로 지어졌다. 또한 역사 광장에 벌교역 유래비와 벌교의 명물 꼬막, 그 꼬막을 채취하기 위한 뻘배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놓여있어 특별한 재미를 준다.

그중 유난히 눈에 띠는 것이 홍교(보물 제304호)를 나타내는 꽃 상징물<사진>이다. 무려 1723년에 벌교천을 건너기 위해 만들어진 다리로, 전국에 남아 있는 홍교 중에 가장 규모가 크며, 지금도 사람들이 통행할 만큼 보존상태가 뛰어나다.

벌교는 포구에 뗏목을 엮어 다리를 놓아 건너 다닌다 하여 유래한 이름이다. 낙안고을의 고읍면에 속해 있던 작은 포구 벌교 지역이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명암이 짙게 깔려있다. 일제강점기 보성과 고흥 일대의 물산을 일본으로 실어내기 위한 포구 도시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벌교에 전해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벌교에서는 주먹 자랑 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지간한 힘과 담력이 아니고서는 벌교에선 명함도 내밀지 말라는 뜻이다. 실제 소설 ‘태백산맥’에서도 순천에서 벌교역 방향으로 난 철교 위에서 오래 버티기 담력 대결을 하는 주먹패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벌교읍은 보성읍보다 인구가 2배가 넘을 정도로 사람이 많고, 활기찬 공간이다. 그런 벌교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꼬막이다. 매년 꼬막 철이 되면 벌교역은 꼬막을 흥정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호남사람에게 겨울에 벌교를 간다는 말은 꼬막을 사러 간다는 말로 통할 정도라고 한다. 덕분에 벌교역엔 짭짤하고 고소한 꼬막 냄새가 가득해서 다른 일로 방문한 사람도 꼬막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꼬막은 ‘재물보(才物譜)’(1798)에 ‘호남사람들이 고막이라 칭한다’에서 처음 찾아볼 수 있는 우리말이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1814)에도 고막이란 말이 나오는데, 그 말의 연원이 재미있다. 꼬맹이, 꼬마 등 작은 것을 지칭하는 접두어 ‘꼬’에, 오두막, 움막 같은 작은 공간을 나타내는 ‘막’이 붙어 만들어진 것으로, 바로 기와지붕처럼 생긴 꼬막 껍데기 때문에 꼬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다.

조정래 작가의 소설 ‘태백산맥’은 1950년대 벌교를 중심으로 냉전 체제에 휩쓸린 한반도의 비극을 다룬 소설로 ‘20세기 한국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으로 꼽히며 700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다. 소설의 입구 벌교역을 나서면 소설 ‘태백산맥’이 펼쳐진다.

보성여관은 소설 속 남도여관의 모티브가 된 곳으로 2012년 한옥과 일식 건축양식을 혼합한 과거 모습으로 복원되었으며, 연이어 나타나는 술도가, 벌교 금융조합, 김범우의 집, 소화의 집 공간이 그대로 현실에 남아있다. 마치 소설 속으로 걸어 들어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또한 조정래 작가의 친필 취재 메모와 소설 필사본 등을 직접 볼 수 있는 태백산맥 문학관이 소설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현부자네 집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어 벌교 문학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자료=국가철도공단 ‘한국의 철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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