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상담소] 죽겠다는 말, 살아있는 이유

입력 2022-02-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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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서울 강서구보건소 사회복지사

퇴근길, 버스 안에서 의도치 않게 옆자리에 앉은 두 여성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 ‘죽겠다’는 말이 많이 등장한 때문인데, 저녁을 먹은 후인지 ‘배불러 죽겠다’는 말을 시작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힘들어 죽겠다, 짜증나 죽겠다, 피곤해 죽겠다, 답답해 죽겠다, 졸려 죽겠다’ 등등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쩜 그리도 많이 죽겠다는 말이 오고가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었다.

그렇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죽겠다’라는 말을 참 많이도 사용한다. 좋아도 죽겠다, 싫어도 죽겠다, 이뻐도 죽겠다, 미워도 죽겠다, 재미있어도 재미없어도, 추워도 더워도, 심심해도, 보고 싶어도, 음식을 먹을 때도 저도 모르게 ‘죽는다’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렇다고 이 말을 진짜 죽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입버릇처럼 입에 달고 사는 ‘죽겠다’는 이 말은 앞말이 뜻하는 상태나 느낌의 정도가 매우 심함을 나타내는 말로 그 상황을 강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가 날 때도 ‘죽여버리겠다, 죽일 놈, 죽을래’ 등등 아주 쉽게 말한다. 감정 표현만이 아니다. 사물을 말할 때도 멋지다, 괜찮다는 말 대신 죽인다고 말하고, 시계가 고장이 났을 때도 죽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죽겠다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것일까? 이어령 박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음을 있는 그대로 우리 생활에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역설적으로 그만큼 생명에 대한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숫자 4를 죽을 사(死)가 연상된다면서 4층을 F로 표기하거나 아예 4층을 건너뛰기도 하고, 사거리 대신 네거리로 표현하는 걸 보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큰 것 같다.

사람에게는 양가감정이란 게 있다. 애증이라는 감정, 웃프다, 시원섭섭하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떤 한 대상에 대해서 전혀 정반대되는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심리 현상이다. 죽음도 예외는 아니다.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사람의 마음속에도 죽고자 하는 마음과 살고자 하는 마음, 이 두 가지 마음이 갈등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죽고 싶은 마음보다 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이다. 죽고 싶은 사람들은 눈앞의 절망에 매몰돼 살고자 하는 마음을 보지 못한다. 상담을 할 때 죽고자 하는 이유뿐만 아니라 힘든 상황에서도 삶을 지탱해온 이유, 살아있는 이유를 함께 탐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살아있는 이유를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잃어버렸던 삶의 동력을 찾을 수 있다. 죽고 싶은 생각이 들거나 누군가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다면 그 이유와 함께 살아야 할 이유를 함께 들어주길 바란다.

김현주 서울 강서구보건소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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