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원호의 세계경제] 반도체로 끝나지 않을 미국의 공급망 정보 요구

입력 2021-11-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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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정보공유를 넘어 인텔리전스 확보 경쟁으로 심화

우리는 국가를 하나의 단위로 분석하는 보고서나 기사를 종종 접한다. 그러나 한 국가 안에는 서로 다른 선호(preference)를 가진 다양한 주체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미중 갈등이라는 상황을 공유하지만, 그 해법이나 대응방법에 있어서 각 구성원이 다른 접근을 선호할 수 있는 것이다.

합리적인 정부는 보통 구성원들의 선호에 기반한 주관적 효용(만족감)의 총합을 극대화하는 정책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효용의 총합을 계산할 때는 각 구성원의 협상력(bargaining power)에 따라 어떤 구성원의 효용을 더 비중있게 다룰 것인지 결정한다. 정부, 대기업, 중소기업의 선호 중 무엇이 가장 중시되는지에 따라 그 국가의 정책적 선택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정부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국가 경쟁력 유지와 제고를 위해 적극적인 개입을 선호하지만, 민간기업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선호하지 않는다. 단적인 사례가 미국 상무부와 반도체산업협회(SIA)의 대립이다. 상무부는 미중 전략 경쟁의 큰 틀에서 대중국 제재 강화를 원하지만, 반도체산업협회는 정부의 최소 개입과 대중국 비즈니스 기회의 확대를 원한다. 기업이라고 해서 모두가 정부의 비개입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한 대기업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정부의 개입을 선호하지 않지만, 그러한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경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문제를 해결해주길 원한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발발과 함께 중국산 통합배선장치(wiring harness) 수입에 차질이 생기면서 현대자동차는 국내 생산중단을 경험했다. 그러나 당시 현대자동차가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정부의 지원이나 개입을 요청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반대로 2020년 두 차례에 걸친 미국 정부의 제재 강화로 반도체 관련 제품의 대화웨이 수출이 전면 중단되었을 때, 필자는 몇몇 중소 반도체 기업들로부터 자체적으로 문제 해결이 어려워 정부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과연 국가이익 극대화의 관점에서 누구의 선호를 중시해야 하는 것일까.

일단 필자는 앞으로 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최근 정부의 개입을 필요로 하는 가장 대표적인 통상 이슈 중 하나는 미국 상무부의 반도체 공급망 정보 요구다. 지난 9월 23일 미국 상무부와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는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에게 45일의 시간을 주고 재고 자료를 포함한 공급망과 관련한 정보를 11월 8일 전까지 자발적으로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미 정부는 ‘자발적 제출’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제출하지 않을 경우 국방물자생산법(DPA)을 근거로 정보 제출을 강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실상 반강제적 조치인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미국 정부의 조치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며, 반도체 이외의 품목에도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미국 상무부의 정보 요구는 아무런 근거 없이 갑자기 시행된 것이 아니다. 지난 6월 8일 상원에서 통과되어 하원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미국 혁신경쟁법(USICA: U.S. Innovation and Competition Act)의 72002조 공급망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운용에 대한 조항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이 조항은 미국의 핵심물품에 대한 공급망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활용을 위해 관련 기업 공급원의 지리적 위치, 기업명, 조달 상 위협요소에 대한 정보 요구 등 폭넓은 내용을 포함한다. 따라서 데이터베이스의 운용을 위해 우리 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정보 요구가 예상되며, 핵심물품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목표라는 점에서는 반도체 이외의 물품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올해 백악관 공급망 조사 보고서에 포함된 배터리, 희토금속 및 희토류, 의약품 관련 기업들에게도 동일한 정보를 요구할 경우에 대비해 우리 기업과 정부가 미리 준비해야 한다. 나아가서 내년 2월까지 추가적인 공급망 조사가 예정된 △국방 △공중보건 및 바이오 △정보통신기술 △에너지 △물류 △농산품 및 식품 등 미국이 정의한 6대 핵심 산업과 관련된 우리 기업에까지 공급망 정보 요구 확대도 예상해볼 수 있다.

미국의 공급망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기업들이 미국의 정보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물음이 생긴다. 제출한 정보는 과연 어디까지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인지, 우리 정부도 갖지 못한 정보를 우리 기업이 타국 정부와 공유한다는 것은 일의 선후에 맞는 것인지, 우리도 이참에 국가 차원에서 핵심물품에 대한 공급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것인지, 우리 기업들은 이에 협조할 준비나 의사는 있는지.

시급히 확인하고 답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는 가운데, 미중 간 대립의 심화와 함께 점점 더 ‘단순한 정보(information)’가 아닌 ‘중요한 정보(intelligence)’에 대한 확보 경쟁이 심화되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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