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내다본 반도체 시장 상황…“국내 반도체 기업 기민한 대응 요구”
반도체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최소 2~3년간 지속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생산능력 증가분이 수요를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이 필연적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자국 제조망을 확충하려는 주요국의 움직임은 더욱 심화하고, 이에 따른 반도체 패권경쟁도 격화할 전망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 연원호 대외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등 반도체 시장 전문가들은 2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 시장 전망 세미나’에서 이같이 밝혔다.
안 전무는 ‘반도체 산업 최근 이슈 및 전망’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올해 초 차량용 반도체 부족 문제가 2~3년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것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다”라며 “자율주행차, 전기차 도입으로 차량용 반도체 수요는 획기적으로 늘었지만, 공급은 적다. 전체적으로 보면 반도체 제조 시설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라고 설명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차량용 반도체 산업 연평균 성장률은 10.7%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생산능력 증가분이 이에 미치지 못해 생긴 일이다. 안 전무는 “올해부터 차량용 반도체 생산공장을 짓는다고 해도, 3년은 지나야 제품 생산이 가능한 수준이 된다”라며 “현재로써는 차량용 반도체를 더 공급하려면 다른 반도체 생산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고, 이 때문에 지금은 PC, 스마트폰까지 (반도체 부족) 문제가 확산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수급 불균형 지속은 산업 내 국가 간 패권 경쟁에 불을 붙였다. 미국은 반도체 산업에 520억 달러를 쏟아붓는 ‘칩스 포 아메리카’, 자국 내 제조 촉진 법안(FABS) 등을 추진하고 있고, 중국의 반도체 굴기도 여전히 지속 중이다. 유럽 역시 반도체 동맹을 출범했고, 일본과 대만도 자국 공급망 확충을 위한 전략을 펴고 있다.
안 전무는 “이러한 현상은 반도체 시장 개화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라며 “(제조와 개발) 역할 분담 체제에서 ‘자국에 모든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라는 프레임이 자리 잡은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중국 시장에서 동시에 사업을 영위 중인 국내 반도체 기업들엔 기민한 대응이 요구된다. 연 연구위원은 "미국이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공급망 정보 요구를 하는데, 이러한 기조는 계속 유지될 수 있다"라며 "미국과 관련된 사업을 하는 국내 기업은 정보 요구를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고, 이에 따른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만일 최첨단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라면 (미국의 견제 때문에) 중국 시장에서 사업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공급 과잉 우려가 나왔던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경우 중장기적으로 유의미한 응용처 변화 흐름이 관측된다. 인공지능(AI), 로봇, 자율주행 등 미래산업이 그 주인공이다. 이러한 신규 수요를 맞추기 위해선 기술 면에선 큰 변화가 요구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앞다퉈 D램 공정에 EUV(극자외선) 공정을 도입하고, V낸드 적층 단수를 경쟁적으로 늘려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세철 씨티그룹 상무는 “15년 전까지만 해도 PC가 메모리 반도체 주요 시장이었지만, 2010년대 후반부터 서버로 넘어왔다”라며 “서버 D램 수요는 꾸준히 유지되는 가운데 자동차용 메모리,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등을 아우르는 메타버스 메모리 수요가 새로 창출되지 않을까 한다”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