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런 장관의 긴축 발언이 점점 세지고 있다. 돈줄을 죄려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시간표도 빨라지는 듯한 분위기다. 일반적으로 ‘테이퍼링’은 코로나19 충격에서 벗어났다는 미국의 자신감, 경제 위기 시대의 마침표를 찍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미 경제전문매체 CNBC 방송은 7일(현지 시각) 필라델피아·댈러스 연은 총재 등 고위 인사 5명의 최근 발언을 종합해 이르면 오는 15~16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테이퍼링(양적 완화 축소)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테이퍼링 전망에 시장 우려도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충격에 따른 경기 회복 부진, 미·중 갈등 국면 등이 테이퍼링과 맞물리면서 한국 경제에 짐이 될 수 있어서다. 미국의 돈줄 조이기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면 국내 금융시장 불안이 커지고 실물 경기로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테이퍼링 논의가 본격화하면 신흥국에 미치는 충격이 적잖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코로나19에 대응해 확대된 유동성이 현재 신흥국에 대거 유입돼 있다”며 “예상보다 빠른 미국의 긴축 전환이 이뤄지면 과거의 ‘긴축 발작’(Taper Tantrum)이 재현될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작년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각국 정부가 코로나19와 관련해 추가로 지출한 재정 규모는 총 9조9300억 달러(약 1경1062조 원)로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9.2% 수준이다.
인플레이션까지 가세한 터라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UBS는 “최근 물가 상승은 에너지 가격 강세 등에 기인하는 나쁜 인플레이션”이라며 “신흥국 주가가 약세를 보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확대가 달러화 강세를 유발해 신흥국 자금 유출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얘기다.
국내 주식시장의 경우 과거를 돌아보면 테이퍼링이 실행된 2014년보다 직전 해인 2013년에 충격이 컸다. 2013년 5월 연준이 테이퍼링 가능성을 처음 언급한 뒤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에서 짐을 쌌다. 하지만 이후 글로벌 경기 회복 기대감이 커지면서 증시는 상승세를 탔다.
KTB투자증권이 과거 유사 테이퍼링 시점을 기준으로 미 증시 추이를 살펴본 결과, 1ㆍ2ㆍ3차 테이퍼링 종료 관찰구간 3개년 동안 우상향 곡선을 그린 것으로 나타났다. 1ㆍ2ㆍ3차 테이퍼링 시점 기준(100포인트 기준) 직전 1년을 포함한 전체 3년 기간(이하 전체 3년) 동안, 주식시장 퍼포먼스 평균값은 105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1차 테이퍼링 종료 후 2년 동안의 주식시장 수익률은 -3.6%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직전 1년을 포함한 전체 3년 기간으로 넓혀보면 수익률은 17.7%로 뛰었다. 2차 양적 완화(QE2) 직후 2년과 전체 3년 수익률은 각각 4.8%, 15.0%를 기록했으며 3차 양적완화 역시 각각 6.0%, 8.5%로 상승 추세가 지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연율 6.4%를 기록하면서 시장 전망치를 충족시키기도 했다. 커지는 경기 회복기대감에 올 2분기에는 두 자릿수를 예상하는 경제학자도 있다. 5.8%(4월)까지 하락한 실업률은 미국 경제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회복 국면에 진입했다는 신호라는 해석도 나온다.
문제는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우리 경제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느냐다. 이에 시장 전문가들은 한국의 기초체력이 충격을 흡수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8%로 상향 조정하는 등 이익 체력이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코로나19 불확실성이 지속되자 한국 증시가 안전한 신흥국 투자처로 각광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기대감을 더한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연말로 갈수록 테이퍼링이 공론화될 것이지만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조기 테이퍼링 이슈는 단기 불안 심리를 자극하는 수준에서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개별 기업이나 산업에서 나타나는 명암 차이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경훈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테이퍼링 구간 동안 경기소비재와 IT는 시장을 아웃퍼폼했던 반면, 금융과 에너지는 시장을 밑도는 모습이었다”면서 “다만 증시를 지배하는 매크로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