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부동산 대책과 농지개혁

입력 2021-04-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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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LH 땅 투기 사건으로 국민의 실망과 분노가 크다. 조속히 강력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우선 정확한 진단을 하고 올바른 처방을 내려야 한다. LH 직원이나 일부 공직자의 땅 투기가 본질이 아니다. LH의 부동산 투기는 빙산의 일각이다. 소수의 부자와 몇몇 대기업이 많은 땅을 소유하고, 온갖 탈법·편법으로 땅을 이용함에 따른 부작용이 터져나온 것이다. 땅 투기가 횡행하는 데에는 부족한 농지도 한몫 한다. 농지는 해마다 줄어들고 타용도 전환도 많다. 지난해 기준 농지 면적은 158만1000㏊에 불과하고 1만6000㏊의 농지가 주택이나 도로 등 타용도로 전환되었다. 곡물 자급률도 21% 정도이고 기후변화로 식량 위기도 걱정된다.

부동산 정책을 성공시키려면 우선 농지제도부터 제대로 개혁해야 한다. 토지는 역사적으로 부의 척도였고 토지 확보를 위해 전쟁도 불사했다. 토지는 개인과 집단의 인식이 다르고 소유자와 경작자의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생산요소와 자산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가치를 가진다. 만인이 찬성하는 토지제도를 만들기는 어렵다. 세계적으로 토지제도를 개혁하여 성공한 나라는 거의 없다. 토지제도를 잘못 건드려 망한 나라는 무수히 많다. 1950년대에 토지개혁을 성공시킨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전통적인 지주와 소작인 제도가 사라진 농지개혁법은 1950년 4월 시행되었다. 두 달 후 6·25 전쟁이 터졌다. 전쟁 중에도 내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워 나라를 지켜냈다.

지난 수십 년간 부동산 정책은 춤을 추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잘못된 부동산 정책으로 빈부격차와 소득격차가 더 커졌다. 이제 열심히 노력해도 내 집 하나 마련할 수 없는 절망적인 세상이 되었다. ‘헬조선’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청년이 결혼을 포기하고, 여성이 출산을 포기하고, 희망도 비전도 사라졌다. 잘못된 인식에 바탕을 둔 주택정책은 빈부갈등을 더 심화시키고 부동산 문제를 악화시켰다. “부동산 투기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말로 시장이 안정되는 것은 아니다.

올바른 진단을 토대로 제대로 된 처방을 해야 한다. 정부가 시시콜콜한 세부사항까지 정하면 시장은 더욱 경직되고 편법이 판을 친다. 지난 50년 동안의 부동산정책이 잘 말해 준다. 정부는 시대정신을 반영한 큰 틀을 만들자. 소유보다는 분배를 강조한 해방 직후의 시대정신에 따라 제헌 헌법에서부터 ‘농사를 짓는 자가 농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이 수립됐다. 시대정신이 반영되었기에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당시 자작농은 14% 정도에 불과했고, 전국 토지의 80%를 소유한 지주들의 토지개혁 반대는 상상을 초월했다. 산업화, 도시화로 이농이 증가하고 상속도 많아짐에 따라 토지제도에 많은 예외를 두었다.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에서도 ‘경자유전’ 원칙을 규정하였으나 단서조항을 달았다. 농업 생산성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 이용, 불가피한 사정의 경우 법률이 정하는 예외를 두었다.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1996년 시행된 농지법도 많은 예외를 두었다.

토지 소유로 인한 불로소득을 방지하고 부동산으로 인한 사회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 이것은 청년과 기성세대가 공동으로 가지는 시대정신이다. ‘토지공개념’도 제기된다. 시기상조라는 주장과 함께 현실 적용에 어려움이 있다. 농지제도를 개혁하자고 하면서 강력한 대책도 제시한다. 비농민의 농지 소유 원천금지, 농업진흥지역 전용 불가, 부재지주 농지 강제처분, 조세상 특례 폐지, 각종 농지 소유 예외조항 폐지, 농지관리 기능 강화 등이 논의된다. 하지만 지나친 규제가 농업 부문에 피해를 가져올 수도 있다.

“농지를 가지고 투기하거나 장난치지 말라”는 말은 농업계의 오래된 염원이다. 대통령의 확고한 철학과 의지도 중요하다. 이승만 대통령은 토지제도를 개혁해야 나라가 발전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 개혁 방식도 국가가 지주로부터 토지를 사서 농민에게 분할 상환하도록 하는 이른바 ‘유상매수 유상분배’의 자본주의적 방식을 채택했다. 자신과 이념이 다른 조봉암을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개혁적인 전문 관료를 투입했다. 직접 개혁안을 들고 전국을 순회하며 농민들에게 설명하고 지주들의 반대를 무마했다. 부자 지주와 가난한 소작인의 출발선이 같은 평등한 사회가 되었다. 해방 후 토지개혁의 성공이 오늘날 농업생산 증대와 식량 자급의 토대가 되었다. 이제 한 해 5만 톤의 쌀을 해외에 원조하는 나라가 되었다. 북한은 우리와 반대 방식을 취했다. ‘무상몰수 무상분배’라는 달콤한 방식을 취했으나 실패했다. 생산성이 떨어지고 만성적 식량 부족에 처해 있다. 최근엔 150만 톤 정도의 식량 부족이라는 비극을 야기하고 있다.

부동산 대책에 문재인 정부의 성패를 걸어야 한다. 남은 임기와 관계없이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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