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간호사 없는 한방 병·의원…암암리 면허 대여까지

입력 2021-03-11 13:05수정 2021-03-11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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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 병·의원 입원실 간호사 매우 적어
"간호사 1명당 환자 60명 볼 때도 있어"
열악한 처우에 간호사 기피 악순환
암암리에 간호사 '면허 대여'까지

▲현재 한의원 입원실에 근무하고 있는 B 씨는 "한의원 입원실은 간호사를 전혀 채용하지 않는 경우가 절대 다수"라고 강조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한방병원이나 한의원 처우가 너무 열악해 간호사들이 가지 않는다.
한방병원 근무 당시 병원 상담에 필요하다 해 보험 설계 자격증을 땄는데 자괴감이 들더라
- 간호사 A 씨

일부 한방병원과 한의원 입원실의 간호사 수가 턱없이 모자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입원실을 운영하는 한의원의 경우, 입원 환자를 돌보는데도 수간호사 한 명만 채용하거나 간호사가 아예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거 1년여간 한방병원에서 근무했던 간호사 A씨는 "간호사 2~3명이 전부거나 한 명뿐인 곳이 많을 정도로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이나 간호사 수가 매우 부족하다"고 증언한다.

현재 입원실 운영하는 한의원에서 일하고 있는 B 씨도 "한방병원의 경우 법정 간호사 수보다 모자라게 채용하는 정도지만, 한의원 입원실은 전혀 채용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법정 간호사 기준 못채우는 한방 병·의원 태반…처벌은 글쎄

▲법정 간호사 정원 비율을 지키지 않는 한방병원과 한의원이 태반이지만, 관리 및 행정 처분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현행 의료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한방병원과 한의원 입원실은 간호사 1명당 환자 5명을 돌봐야 한다. 하지만 서울 시내 한방병원 중 10곳 중 7곳이 적정 간호사 수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서울 시내 한방병원 66곳 중 19곳을 제외하고 모두 간호 등급이 7등급이다. 간호 등급은 간호사 1명이 돌보는 병상 수에 따른 등급으로, 7등급이면 간호사 1명당 6개 이상의 병상을 본다는 뜻이다.

입원실 운영 한의원의 경우 심평원에 신고하지 않아 아예 관련 데이터가 없는 상황이다. 업계에 따르면 대부분이 간호사를 채용하지 않거나 1~2명만 채용한다.

관리 및 행정 처분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구인난이 면책사항이 되기 때문이다. 의료법 시행규칙 38조 1항에 따르면 인력 수급상 필요할 때 간호사 또는 치과위생사 정원의 일부를 간호조무사로 충당할 수 있다. 문제는 충당 인원이 '일부'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열악한 처우에 '보험 설계사 자격증' 요구까지

▲한방병원에서 근무했던 A 씨는 의료·간호 업무와 상관 없는 보험 설계사 자격증을 따야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간호사들이 한방병원과 한의원을 꺼리는 건 열악한 처우 때문이다.

실제로 이달 취업 및 구인 포털 잡플래닛에 올라온 대전광역시 모 한의원의 간호사 구인 공고에 따르면 주 6일 근무에 월급은 190만 원에 불과했다. 일반 병원도 노동 강도가 세서 꺼리는 마당에 더 열악한 처우의 한방병원으로 향할 이유가 없다.

한방 병원의 특성상 의료·간호 업무 외에 기타 잡무에 시달리는 것도 기피 원인 중 하나다. A 씨는 한방병원에 근무할 당시 환자 40명~60명을 봐야 했다. 그는 "환자 수도 많고 잡무 등이 너무 많아 의료인으로서 보람 느끼기 어려웠다"고 강조했다.

A 씨는 근무 당시 병원에서 교통사고 환자의 보험 상담을 위해 필요하다며 보험 설계사 자격증까지 따야 했다. 그는 "병원 상담에 필요하다 해서 보험설계 자격증을 땄는데 정말 자괴감이 들더라"고 망했다. 열심히 공부해 딴 자격증으로 보험 상품을 설명해 준 환자 중에는 이른바 '나이롱' 환자가 많았다.

A 씨는 "설계사 자격증이야 내 영역을 넓히는 것이나 이해한다 치더라도. 병원에 있으면서 술 마시며 놀고, 수액 좀 맞으면서 의료보험에 구멍 내는 환자를 너무 많이 봤다"고 토로했다. 이는 결국 A 씨가 1년도 채 안 돼 한방 병원을 그만둔 이유 중 하나가 됐다. 그는 현재 코로나19 선별 진료소에서 일하고 있다.

간호사 인력 수급 악순환에 '면허 대여' 암암리

▲행동하는 간호사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소속 간호사 등이 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방호복을 입고 간호 인력 기준 마련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간호사 인력 수급 악순환 속에 일각에서는 암암리 면허 대여까지 이뤄지고 있다. 의료인 면허 대여는 5년 이하 징역 혹은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중범죄다.

간호사 A 씨는 "주변에서 면허를 대여 했다는 사람을 본 적은 없지만, 실제로 200만 원에 면허 대여 제안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B 씨는 "일부 한의원 원장들이 의료법상 간호사 채용 기준으로 민원이 들어오면 '면허 대여를 하면 된다, 100만 원이면 가능하다' 말하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면허 대여 사실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암암리에 면허 대여가 이뤄지는 것 같다"고 증언했다.

사실 간호사 정원 비율 문제는 한의원과 한방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7년~2019년) 간호사 법적 정원 기준을 지키지 않은 의료기관은 4775곳에 달했다. 전체 병원 10곳 중 4곳(43%) 정도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실제 행정처분을 받은 기관은 119건에 불과하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병원 규모가 작고 보수가 낮을수록 간호사 이직률이 높다"며 "간호사 정원 기준 준수와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병동 간호 인력 최소 기준의 법제화를 촉구하며 "간호 인력 배치 하한선을 법제화해 병원 규모와 종류에 상관없이 반드시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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