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크래커] 연예인만 폭로?…한국 사회 뒤흔드는 '학폭' 논란

입력 2021-02-2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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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연예계 연이은 '학폭' 의혹…90년대생 유명인 중심
2000년대 '일진' 문화 영향으로 학교폭력 만연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 트라우마 치유 효과 크지만
정확한 사실관계 규명 어려워 사과받기 쉽지 않아
잘못된 증언으로 자칫 엉뚱한 피해자 나올 우려

▲최근 200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90년대 생 유명인을 중심으로 학교폭력 피해 의혹이 터져나오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1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생각난다.
- 학교폭력 피해자 A 씨(26세)

#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A(26) 씨는 동갑내기 배우의 학교폭력 의혹 글을 보며 10년 전 과거를 떠올렸다. 나이만 같을 뿐 지역은 달랐지만, 친구들 앞에서 때리고 돈을 뺏은 폭력의 방식은 거의 비슷했다. A 씨는 "1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생각난다"며 "그때만 떠올리면 여전히 고통스럽다"고 고백했다.

#고작 한 달. 짧은 기간이었지만 B(27) 씨는 아직도 가끔 10대 시절 겪었던 학교폭력 꿈을 꾼다. 지금은 장성한 청년이 됐지만, 학교폭력 기억은 여전히 그를 괴롭힌다. B 씨는 "지금도 우연히 그 동네를 지나가면 골목길을 지나가기가 무섭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의혹이 스포츠계, 연예계를 넘어 일반인까지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폭로를 지켜보던 사람들 대다수는 학교 폭력이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한다. 실제 연예인 학폭 폭로의 장이 된 네이트 판에는 일반을 대상으로 한 폭로도 속속 나오고 있다.

특히 1990년 생들에게 학폭은 먼 일이 아니었다고 증언한다. 2000년대 교실은 치열한 입시 경쟁 속 학교폭력이 만연했다. 지금보다 학생 인권 및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낮았고, 실효성 논란은 있지만 이른바 '학폭위'라 불리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도 없었다. 당시 드라마와 인터넷 소설 등 대중문화는 일진 문화를 방조하고 미화하기 바빴다.

문제는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성인이 되어서도 피해자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성인이 되면서 학교폭력 피해 고통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에는 잘못의 크기를 인식하지 못했던 행동의 심각성을 성인이 되면서 제대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곽금주 교수는 "어린 시절에는 제대로 인식 못 했던 (행위에 대한) 기억이 사고가 발달하며 다시 만들어질 수 있다"며 "어린 시절에는 어렵고 무서워 애써 잊었던 것들을 성인이 되어 다시 생각했을 때, 그 고통이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폭력 경험, 인간관계 대한 두려움과 희생 성향 키워

▲어린 시절 학교폭력에 대한 고통은 성인이 되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거부 상황에 민감해질 수 있다. 연인, 친구, 직장동료 등 각종 대인 관계에서 거절당할 것이란 걱정에 사로잡히고,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대인관계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성향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성향은 '거부민감성'이라 한다.

지난해 11월 한국청소년학회를 통해 발표된 '학교폭력 피해경험이 사회불안에 미치는 영향: 거부민감성의 매개효과' 논문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한 학생은 거부민감성이 높아지며 이로 인해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거부민감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편향되고 경직된 사고방식을 가져 유연한 사고를 하기 어려워진다.

곽금주 교수는 "학교폭력 상담은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학교폭력을 경험했던 시기는 물론 성인이 되어 그 고통을 느끼게 되면 또다시 상담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1388 청소년 상담센터' 등 학교폭력 상담 서비스는 10대 위주로 제공되고 있다. 성인은 다른 심리 상담 전화를 이용하거나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피해자 치유에 큰 역할

▲과거 학교폭력 사실은 그 특성상 사실 관계 규명이 쉽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지속적인 상담과 함께 피해자에게 필요한 건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다. 곽금주 교수는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가 피해자 트라우마 치유에 큰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유명인들의 학교폭력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들도 일관되게 피해자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배우 박혜수의 학교폭력을 주장하는 피해자 모임은 24일 SNS를 통해 "저희가 바라는 것은 박혜수의 진심이 담긴 사과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사과를 받아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시간이 오래 지난 까닭에 사과를 위한 사실관계 규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당시 학교폭력이 음지에서 이뤄진 경우가 많아 애초에 증거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다. 결국, 사실 규명은 피해자 증언과 정황 증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유명인의 학교폭력 의혹을 둘러싸고 진실 공방이 이어지는 이유다.

연이은 폭로 속에 자칫 엉뚱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온라인 공간에서 대부분 익명으로 이뤄지는 증언의 특성상 진실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 30대 직장인 C 씨는 일련의 학교폭력에 대해 "인과응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최근 나온 폭로 중에선 일부 거짓 폭로도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일단 폭로가 나오면 가능한 '중립 기어'를 박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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