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인터뷰] 정춘숙 여가위원장 “정치ㆍ사회적 소수 여성 '의사결정 구조' 진출 중요”

입력 2021-02-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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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성인지 감수성 뒤떨어져…사건 발생시 '2차 가해' 악순환

각 정당 성평등 조항 이행해야
지역구 여성공천 30% 의무화 발의
경단녀 경제활동ㆍ부부재산 공유
입법 통해 여성 문제 해결 앞장서

▲정춘숙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국회는 특히 남성 중심적이라 사회적 소수자인 여성이 여기서는 더 소수자가 된다. 그래서 성인지 감수성이 제일 민감해야 하는 곳임에도 뒤떨어져 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인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바라본 국회의 모습이다.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난 정 의원은 31일 인터뷰에서 여가위원장에 취임한 후 국회에서 여성 의원이 더 많이 참여하고, 여성 문제가 더욱 중대하게 다뤄지도록 유도해왔다고 밝혔다.

“의원 해외순방을 하면 여성 의원 참여가 매우 적었는데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도록 챙겨 달라고 요청했다. 각국의 여성정책을 4년에 한 번 평가하는 국제연합(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회의에 그간 국회의원이 한 번밖에 가지 않아서 박병석 국회의장에 2023년 회의에는 반드시 보내 달라고 요청해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는 여가위원들에게 겸직하고 있는 상임위에서 여성 문제 질의를 꼭 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동안 정치권은 여성 차별뿐 아니라 성 추문도 끊이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정치권의 잇따른 성 추문은 공인들이기에 파장이 커서 2차 가해에 쉽게 노출되고 수습은 어렵다.

▲정춘숙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정 의원은 정치권이 아직도 내부 성범죄에 대한 대처가 미숙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추행 의혹이 발생하면 정당은 어떻게 대응할지 어려워한다. 당사자는 쌓아왔던 정치인생이 없어질 위기에 처하니 전쟁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남성 카르텔이 많은 정치권 특성상 2차 가해를 당할 가능성도 크다”며 “당 안에서 피해 사실을 알려도 보호 프로세스 작동이 힘들어 n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치인 성추문으로 2차 가해가 발생한 대표적인 최근 사례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이다. 당시 민주당은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 칭해 2차 가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서야 제대로 된 공식사과를 한 상황이다. 정 의원은 당시에 적절한 판단이 아니었다고 인정했다.

정 의원은 “제가 꺼낸 용어가 아니라서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권력관계에 있으니 피해자로 부를 수 있는 건데 당의 성폭력 사건 처리 규정에만 따라 피해호소인이라고 주장한 것 같다. 피해자가 자신을 드러내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상태라 2차 가해 우려가 있는데 그 용어를 썼던 건 적합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날 선 비판에 이어 해법도 내놨다. 여성이 ‘의사결정 구조’에 다수 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여성은 숫자부터 밀리는 형국이다. 21대 국회가 여성 의원 수가 가장 많다지만 57명으로 19%에 불과하고, 17명의 광역단체장 중 여성은 전무하다. 정 의원은 이에 총선 지역구 30% 여성 공천 의무화 법안을 낸 바 있다.

“정당들이 성범죄 문제를 해결할 기구를 마련하고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는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수행할 힘이 있어야 한다. 여성들이 의사결정 구조에 많이 들어가야 하는 이유다.”

▲정춘숙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정의당 성추행 사태와 관련해 정 의원은 “이 사람이 그럴 리가 없다는 식의 예외는 없다는 걸 보여준 사건이다. 항상 각성하고 각자 자기검열을 열심히 해야 함은 물론 여성을 존중하는 인식 개선을 위해 여성이 의사결정 구조에 진출하는 게 필요하다”며 “각 당의 당헌·당규상 성 평등 관련 조항이 실제로 작동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의원이 거듭 강조하는 건 여성의 ‘의사결정 구조 진출’이다. 이는 비단 정치권만의 이야기가 아닌 사회 전반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서 정 의원은 경력단절 방지에 주목한다. 여가위원장에 취임하자마자 환경노동위원을 겸하는 같은 당 이수진 의원과 함께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난 것도, 경력단절 여성 경제활동 촉진법 전부개정안을 낸 것도 이런 이유다.

 “여성이 아이를 낳게 되면 유연근무제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더라도 정규직과 다름없는 보상을 받아야 한다. 외국은 비정규직이라도 정규직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고용이 불안하니 더 많은 보상을 받는다. 출산과 결혼으로 인한 경력단절이 해결되지 않으면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또 노동력 부족도 성차별이 사라지고 동일노동·동일임금이 이뤄져 고학력 여성들이 대거 진출한다면 해결될 수 있다. 모든 핵심 사회문제들이 모두 여성 문제가 기반인 셈이다.”

여성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2019년 기준으로 남성의 69.4% 그쳤다. 반면 맞벌이 가구의 여성 가사노동 시간은 3시간 7분으로 54분인 남성보다 3배나 길다. 부부가 똑같이 일을 하면서도 돈은 더 적게 받고 가사노동은 여성이 더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경력단절이 숱하게 발생하는 이유다. 같은 해 기준 여성 고용률은 51.6%이고 경력단절여성은 169만9000명으로 파악됐다. 특히 15~54세 기혼 여성 중 경력단절 비율은 19.2%에 달했다.

▲정춘숙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처럼 여성이 더 적은 소득을 올리거나, 경력단절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다 보니 혼인 중 형성된 자산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나라는 주택 등 굵직한 자산의 명의는 주로 남편으로 돼 있다 보니 경제적 ‘의사결정’에 여성이 사실상 배제된다. 이 때문에 1997년부터 ‘부부재산공유제’ 도입이 떠올랐다. 부부 각자 명의의 자산을 별개로 보는 현행 별산제에서 혼인 중 발생한 재산은 부부가 공유한다는 제도다. 정 의원은 이런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20대 국회에 이어 이번 21대 국회에서도 대표발의했다.

“제가 여성의 전화에 있을 때 처음 문제를 제기했다. 여성들은 아르바이트 등 여러 형태의 일을 하거나 가사노동 같은 보여지지 않는 일을 하다 보니 재산 증식 기여 정도가 제대로 남지 않는다. 그래서 함께 모은 재산임에도 대부분 가구주인 남편 이름으로 등기를 한다. 우리는 별산제라 명의자의 소유로 보기 때문에, 여성은 이혼하면 재산분할청구권이 있긴 하지만 자기 재산을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회적 지위가 비교적 낮아 법률서비스를 받는 데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부부재산공유제나 외국처럼 재정이 열악할 우려가 있는 쪽에, 양육하는 쪽에 더 많은 재산을 분할하는 보완책이 필요한 이유다.”

정 의원이 발의한 민법 개정안의 핵심은 주거용 건물 등을 처분할 때 명의자가 아닌 부부관계인 자에게 ‘허가’를 받도록 하고, 혼인 중에도 재산분할청구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나아가 금융자산에도 적용해 배우자의 보유현황을 찾을 수 있도록 금융기관에 요청토록 하는 제도도 제안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여성 사회진출이 많아지면서 공유재산제가 오히려 부부 서로의 자유만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남는다. 이에 정 의원은 그럼에도 아직까진 필요한 제도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여성 가구주 비율은 31.9%에 그쳐 여전히 남성 가구주가 2배 넘게 많고, 특히 여성 가구주이면서 배우자가 있는 경우는 26.8%로 10년 전인 2010년 24.3%와 차이가 없다는 통계자료를 근거로 해서다.

문제는 허가 없이 매도한 재산을 거래한 ‘제3자의 보호’다. 제3자가 부동산이나 금융자산 매입했는데 배우자의 허가를 받지 않은 게 나중에 드러나면 거래에 차질을 빚은 피해를 받게 된다. 부부재산공유제가 필요성이 제기된 지 20년이 넘도록 도입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이에 정 의원은 ‘부부재산 약정 공시제도’를 보완책으로 제시하며 해당 법안이 본격 심의되면 여러 대안이 제안될 수 있다고 낙관했다.

정 의원은 “결혼 전에 모은 건 자신의 것이지만 결혼 중에는 경제공동체이니 재산을 공유하는 게 맞다”며 “그럼에도 상대 재산이 어디 있는지도 몰라 이혼을 해도 분할청구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민법이 그것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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