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인터뷰]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 "언택트 시대 맞은 도서관…정보 생산 플랫폼 진화를"

입력 2020-06-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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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74년 만에 첫 여성 관장…"AIㆍARㆍVR 등 신기술이 변화 견인"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이 2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도서관이 변화를 꾀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 사회를 덮치면서 더욱 강조되기 시작했다. '국가대표 도서관'인 국립중앙도서관은 미래전략, 공간 개선, 포스트 코로나 대응과 관련한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며 이러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중심에는 서혜란 국립중앙도서관장이 있다.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2일 만난 서 관장은 "도서관의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가치 구현이 중요하다"면서 "인공지능(AI), 블록체인,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등 신기술이 도서관 업무 변화를 견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언택트(비대면) 시대'에 국립중앙도서관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정보 생산 플랫폼'의 기능을 해야 한다는 방법론을 제시했다.

"이전까지 도서관은 누군가가 생산한 정보를 이용자에게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했습니다. 이젠 도서관이 스스로 정보를 생산하고 생산자를 길러내는 역할도 합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더는 구별되지 않아요. 생산하는 자가 소비하고 소비하는 자가 생산하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생산자, 소비자 모두에게 서비스합니다. 도서관은 이제 '정보 생산 플랫폼'이 됐죠."

◇ '사서 출신', '첫 개방형', '최초 여성' 수많은 수식어 = 서 관장은 40여 년간 도서관계에서 활동했다. 그야말로 잔뼈 굵은 현장 전문가다. 그는 지난해 8월 민간 공모를 통해 3년 임기의 첫 개방형 국립중앙도서관장이 됐다. 사서 출신이자, 첫 여성 관장이기도 하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올해 75주년입니다. 제가 작년에 임명받았으니 74년 만에 최초의 여성 관장이 나온 것이죠. 정말 늦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유리천장이 얼마나 높은지 잘 말해줍니다. 사서직은 다른 어떤 직종보다 여성의 비율이 높아요. 하지만 전 세계 국립도서관에 여성 관장이 여전히 많지 않은 게 현실이죠. 후배들이 저보다 더 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의 문을 열었다는 생각을 해요. 앞으로 여성 관장 임명이 흔한 일이 돼야 할 텐데요."

▲사서 출신이자 첫 여성 관장인 서 관장은 "도서관계의 유리천장을 실감한다"며 "능력있는 후배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서 관장 역시 일과 가정의 양립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는 신라대 문헌정보학과 교수가 되면서 부산에 정착할 당시를 떠올렸다.

"자녀를 1년 동안 서울에 있는 시가에 맡긴 적도 있고, 친정 부모님이 몇 달 동안 부산에 내려와 계신 적도 있었어요. 온갖 쇼를 다 했죠. 그땐 육아 휴직을 하면 사회적으로 좋게 보지 않았던 시대였어요. '여자들은 다 그래'라며 일반화하는 게 싫었어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인데 말이에요. 남편이 '도와준다'라고 했을 때도 '우리 일'이라고 했어요. 바깥 일도, 집안일도 똑같이 해야 했죠. 다행인 점은 아이들이 겨울방학과 여름방학에 태어났어요."(웃음)

◇ "민간에서 터득한 유연함으로 국립중앙도서관 바꾸겠다" = 두 달여 뒤면 서 관장은 취임 1년을 맞는다. 국립중앙도서관장이 되기 전과 1주년을 앞둔 지금 그의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늘 도서관만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밖에 있을 때도 국립중앙도서관을 관심 있게 봤죠. 도서관 중심엔 국립중앙도서관이 있잖아요. 취임했을 때도 우리 선생님들한테 좋은 말만 하진 않았어요. 밖에서 봤던 시각을 잃어버리지 않고 계속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면서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밖에선 의문을 가졌던 점들이 안에 들어와서 보니 이해가 됐어요."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거쳐야 할 관문과 제약이 많음을 실감했다. 민간보다 빠르게 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강점인 유연함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했다.

"공적인 틀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 국립중앙도서관이 공적 기관이지만 사회 기관으로서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제 힘을 집어넣어야겠죠."

지난 3일 국립중앙도서관은 포스트 코로나 TF 5차 회의를 열었다. TF팀원을 중심으로 모든 구성원이 의견을 내고 있다. 그는 국립중앙도서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비대면 시대에 맞게 소위 '오픈 액세스'라고 불리는 '저작권 이용동의' 캠페인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서 관장은 도서관에 오지 않아도 정보 공유를 원활하게 하는 데 필요한 조치라고 판단했다.

"정보에 대한 빠른 소통이 이뤄져야 또 새로운 정보가 생겨납니다. 오래전부터 해온 일이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힘을 실어주고 싶어요. 저작권을 존중하면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대책인 것이죠."

◇ 비대면 시대, 도서관도 바뀌어야 '생존' = 국립중앙도서관은 '납본'의 법적 권한을 갖고 있다. 모든 책을 완벽하게 수집해야 한다는 책임이 있다. 하지만 1965년 납본법 발부 이전에 발행된 책들을 완벽하게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납본의 대상을 온라인 자료까지 확대한 상황이에요. 모자란 부분을 채우는 일이 제일 중요한데 제대로 해내고 싶어요."

서 관장은 국립중앙도서관의 1300만 장서를 분석·가공해 데이터베이스(DB)화 시키고, 이를 위해 전문 교육을 통한 사서 역량을 강화하는 목표를 임기 내에 이룰 계획이다. 아울러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수장고'(유물 보관장소)를 강조하는 만큼 국립중앙도서관도 현재 예비 타당성 과정에 있는 평창의 '국가문헌보존관'을 통과시켜 수집한 자료들을 완벽하게 보존시킬 방침이다.

▲서 관장은 "국립중앙도서관이 수집한 자료들이 완전하게 보존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사람들은 이용의 편의성은 이해하지만 보존의 중요성에 대해선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디지털은 아무 데서나 이용할 수 있고 백업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백업과 보존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건물만 짓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제대로, 과학적으로 보존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합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최근 디지털도서관을 개편하면서 '미디어 창작실'을 새롭게 만들었다. 10개의 스튜디오와 영상·음향 편집, 그리고 기획 회의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됐다. 도서관 이용자들이 가짜 뉴스를 구별하는 안목을 기르고 생산자로서 올바르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됐다. 3월 재개관 해야 했으나 코로나19여파로 미뤄졌다.

"새롭게 달라지 환경에 맞는 서비스 모델을 만들어야 해요. 갑작스럽게 팬데믹이 일어나면서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어요. 조용하고 공부만 하던 도서관에서 토론하고 사람들이 모이는 '생동감 있는 도서관'으로 바뀌고 있던 찰나에 '비대면 시대'가 돼버린 거죠. 인간성이 훼손되지 않으면서 네트워크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사회적 기관인 도서관이 해야 해요. 생존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 것이죠. 디지털 시대이니 디지털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는 뻔한 답 말고, 진짜 해답을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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