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한국 경제에는 지난 한 세대 동안 큰 위기가 두 번 있었다. 그런데 두 위기 상황은 각각 내부, 혹은 해외의 요인에 의해 발생했다. 필요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국내 경제가 매우 취약해진 가운데 환율 및 거시경제 정책 실패로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하지만 당시 선진국 경제 사정이 양호했다. 급락한 원화 환율에 힘입은 한국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은 급등했고, 이는 수출 호황으로 이어지며 위기 상황이 끝났다.
두 번째가 전대미문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이다. 시차를 둬 유럽에서 재정위기가 발생하는 등 서방 선진국들의 사정이 상당히 어려웠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내부적으로 위협이 되는 큰 악재가 없었다. 제일 큰 수출 시장으로 자리매김한 이웃 경제 대국 중국의 사정이 양호한 덕에 위기 발생 직후 초기 충격파가 상당했음에도 빠르게 벗어나 비교적 견조한 모습을 유지했다.
내년 이후 상황은 어떻게 다를까?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을 보자. 2008년 대형 위기의 진원지이며 신·구 정부 교체기임에도 경제정책 지도부가 대통령의 전폭적 신뢰하에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특히 G20의 긴밀한 정책 공조를 주도하며 위기가 확산하는 것을 차단했다. 지금 미국의 모습과는 정반대이다. 본인이 몇 달 전 임명한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해임을 논의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무절제한 행보는 지난 2년간의 돌발적 언행에 익숙해진 사람들까지 당황스럽게 하고 있다.
미국 경제는 이달에도 연준이 예정했던 금리 인상을 실행할 수 있을 만큼 견조하다. 실업률은 수십 년간 최저 수준이며 임금이 오르고 소비도 늘고 있다. 하지만 실물경제가 호황임에도 주식시장이 급락하는 것은 투자자들을 겁먹게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작년에 단행된 법인세 인하의 효과로 올해 주가가 급등했지만 향후 기업 실적 전망이 불투명해 주가가 조정받는다는 것이 부분적인 설명이다. 더 어두운 설명은 향후 특검 결과 등으로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위협받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순전히 정치적인 관점에서 임기응변적 계산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가 하는 우려이다. 그렇다면 파괴력이 큰 중국과의 무역 전쟁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또 앞으로 부정적 충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통령이 대응할지 예상할 수 없다는 비관론이 대두되고 있다.
연방정부 휴업(셧다운)은 지지자 결속을 위한 정치적 계산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본인이 원하는 국경 장벽 예산을 늘리라고 셧다운을 단행했다. 또 주가 상승을 자신의 성과로 여기는 트럼프는 근래 주가 하락을 금리인상 탓으로 여기며 연준을 비판하고 있다. 금융시장 안정의 최후의 보루가 중앙은행인데,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재무장관의 무마 노력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 불안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하에서 2008년과 같은 미국 주도의 긴밀한 국제공조는 그림의 떡이다. 이런 가운데 어디에선가 잠재적 위험 요인이 본격화하면 세계 경제는 크게 어려워질 수 있다. 유가의 가파른 하락이 하나의 조짐이다. 한국 경제의 2%대 성장은 수출 호조세 지속이 없으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해외 여건이 악화하면 수출 부진은 불가피하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고용과 취약계층 소득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는 올해 내내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나쁜 정책이라도 최저임금 적용 범위의 미조정으로 좋은 정책이 된다고 우기고 있다. 고속도로에서 역주행하는 운전자라면 우선 차를 갓길에 멈춰 안전하게 고속도로에서 나올 생각을 해야 함에도 속도를 좀 낮춰 운행하겠다는 형국을 연상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정부 지출을 제외한 민간 소비와 투자는 마이너스 성장도 충분히 가능하다. 성장률이 마이너스가 아니면 선방했다 할지 몰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