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苦言(1) - 통합의 전략

입력 2007-12-2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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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향후 5년 동안 추구해야 할 가장 주요한 정책방향은 무엇일까. 그것은 분열된 사회 각 분야의 통합에 있다. 통합은 선진화에 앞선다.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 직후 국가 발전 방향으로서 지난 시절의 민주화에 이어 앞으로는 선진화를 이루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선진화는 통합을 먼저 이루고난 후에 시행해야 할 과제다. 통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지난 10년 동안의 나라를 살펴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사회 각 분야에 누적된 국론분열과 혼란스러움, 그리고 이에 따른 시민들의 좌절과 국가적 쇠퇴현상은 국가 운명을 걱정할 만큼 위태로운 수준이었다. 통합은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서 다른 무엇보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최우선 과제다.

여기서 말하는 통합은 단순히 구호에 그치는 정치적•물리적 통합이 아니라 계층과 정파, 지역을 초월한 진정한 의미의 통합을 의미한다. 서로가 맘을 열고 힘을 합쳐 국민 각 개인의 행복추구와 국가 발전을 위해 하나로 뭉치는 통합을 말한다. 정부와 민간이 하나가 되고, 조직과 개인도 일치단결하는 그야말로 범국민적 통합이어야 한다. 이런 통합이라야 그 통합이 단순하고 물리적인 통합이 아니라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적 통합의 차원으로 발전한다.

통합 전략의 순서는 우선 정치분야부터 발휘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 기간 중 끊임 없는 네거티브에 시달렸다. 지금도 여당이 발의한 BBK특검법이 그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 모르긴 해도 그는 감정대로 한다면 자신을 그토록 괴롭힌 상대 정당을 박살내고 싶을지 모른다. 김경준과 내통해 네거티브 전술을 구사했다고 간주하는 주모자들을 색출해 엄벌에 처하려는 복수심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밝혔듯이 당선자는 사회 통합을 위해 상대방을 끌어안는 포용전략을 펴나가야 한다. 그가 포용하지 않으면 정계는 그의 집권 기간 내내 끊임없는 정쟁과 소모전에 파묻힐 것이다.

대통령이 진정한 통합정책을 추구하는데도 상대 정당이 계속 꼬장부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 때는 대통령이 가만있더라도 다른 데서 잘못을 묻는다. 국민들은 지금 그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그들이 네거티브에 여전히 매달리면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그들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대선 후 최근 동향을 보면 여당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허물과 잘못 때문에 대선에서 참패하고서도 패인을 다른데서 찾으려 한다. 아직도 대통령 당선자에게 강한 적개심을 나타내는 여당 의원들이 적지 않다. 선거도 하나의 게임이므로 경기가 끝나면 승자는 패자를 위로하고, 패자는 승자를 축하해주는 것이 게임의 규칙이다. 그런데 여당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경기에 지고서도 여전히 상대방에 허물이 있다고 우기고 있다. 여당의 이런 태도를 국민들이 어떻게 해석할까. 아마도 내년 총선에서 참패라는 결과로 책임을 물을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그들은 국민을 위한다면서 그들만의 붕당(朋黨)을 위해 권력을 악용하지 않았던가. 지난 10년 동안 그들은 국민을 편 갈라 적대감 속에 서로 증오하고 갈등하도록 선동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복지정책을 시행한다면서 오히려 극빈층을 양산하고 양극화 현상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들은 얼치기 좌파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면서 건전한 사회 양식인들을 적대세력으로 몰아 부치지 않았던가. 그들은 능력도 모자라고 잘나지도 않은데도 함부로 국민을 경멸하고 3류 정책으로 덤벙대다가 국정을 파탄내지 않았던가.

이 모든 것들이 이른바 좌파정권이라는 지난 10년간 정부가 남겨놓은 사회 유산들이다. 이 유산들이 지금 우리 사회의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사태가 이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아집과 우직스런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정신차려서 현실을 직시하고 거기에 적합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4월 총선에서 궤멸적 타격을 받을 것이다.

여당이 어떤 태도를 취하든 당선자는 그들에게 무한정한 관용과 포용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새 시대는 정치분야부터 통합이 진정으로 이루어지고 그 통합이 전략적 차원으로까지 업그레드된다. 그들을 용서할지 안할지는 국민이 심판한다.

두 번째 통합 분야는 사회분야의 통합이다. 현 시점에서 가장 시급히 치유돼야할 분야가 사회부문의 통합이다. 과거 정권들이 저질러 놓은 가장 큰 폐해가 사회 분열이다. 그들은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분열과 갈등, 반목의 씨앗을 뿌려놓고 이를 더욱 심화시켰다.

그들은 분배정책으로 없는 사람들을 위한다고 했으나, 실업은 오히려 더 늘어났고 소득계층 간 격차는 더 벌어졌다. 집 없는 사람을 위해 부동산을 잡겠다고 했으나 집값은 더 오르고 서민의 내 집 마련은 더욱 멀어져만 갔다. 오죽하면 20대 청년들이 그들을 일컬어 월 88만원 받는 ‘88세대’라고 자조하고 있는가.

지역 갈등도 더 심화됐다. 지난 10년 간 지도자들은 동서 간 지역갈등을 해소 또는 완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들이 지역보스 노릇을 하면서 지역감정의 골을 더 깊게 만들었다. 대통령과 여당 지도자들은 지역감정 해소를 말로만 외쳤지, 항상 지역에 근거를 둔 정략에 몰두했다. 한 때 이런 말도 유행했다. “ㅇㅇㅇ 출신 중에 대학 졸업장만 갖고 있으면 모두 한자리한다.” 그들이 얼마나 지역주의에 탐닉하고 희희낙락했는지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들의 좌파적 사고와 정책은 이념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상대방 의견을 무시하거나 억눌렸다. 그들은 자기들만이 옳고 상대는 틀리므로 무조건 자기들을 따라오지 않으면 재미없다는 식으로 국민을 윽박질렀다. 그들의 이런 행동과 사고는 국민을 편가르기하고 극심한 정책갈등과 민심이반을 낳게 했다. 세대간•계층간 갈등은 불화를 일으키고, 심지어 가족간에도 갈등을 야기하게 만들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좌파적 사고는 그들만이 옳다고 여긴다. 그들의 사고와 가치관은 그래서 그만큼 경직돼있다. 자기 고집만 피우고 상대에는 적대감을 표현하는 아주 못된(?) 일원적 경직화에서 헤어날 줄 몰랐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절대주의 시대나 마르크시즘 사회에서나 있음직한 가치의 일원화 세계가 아니다. 지금은 모든 가치와 사상이 제각기 존중받고 논의되는 다원화 시대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런 세계적 추세와는 정반대로 일원적인 그들만의 비뚤어진 사고를 국민들에 강요했다. 그래서야 국민의 동의를 받아낼 수가 처음부터 없었다.

지난 70년대 이후 지금의 현대사회를 후기산업사회(Post-industrial Society)라 한다. 정보화사회라고도 하는 후기산업사회의 핵심 가치는 다양성(Diversity)과 변화(Change), 그리고 속도(Velocity)다. 즉 지금 세상은 예측가능한 모든 가치가 다양하게 발휘되는 환경 속에서 변화가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그런 사회다. 그리고 이 속도는 자본주의적 가치 추구라는 방향성을 가진다. 이 세 가지 요소들이 ‘세계화’라는 용어 속에 함축되어 인류 사회를 발전시키는 추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즉 지금 인류 사회는 다양성이라는 기본 가치를 추구하는 속에서 변화와 방향성 있는 속도를 요구하는 그런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다양성이 주개념이고 변화와 속도가 종개념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사회를 발전시키고 변화시키는 그런 사회가 바로 현대사회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우리는 어땠는가. 그들은 다양성을 철저히 무시했다. 그들만이 절대선이라는 오만과 독선, 아집에 빠져 좌파적 색채를 띠면서 反세계화의 길을 갔다. 세계화 가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거나 아니면 무식해서 그러했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자꾸만 거꾸로 갔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이념서적 몇 권 읽고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 대통령부터 그랬다. 얄팍한 지식에 사로 잡힌 그들은 자신들이 마치 세상일에 도사인 것처럼 착각했다.

그냥 웃고 넘기기는 너무나 희극적인 일들이 있다. 그건 좌파 사고에 젖어있는 그들을 만나 얘기하거나 토론해보면 의외로 이론적 토대가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그들 대부분은 그들 사상의 원조격인 마르크스의 자본론 全5권을 독파하지도 않았다. 그저 남들이 한 말이나 주변 잡서를 읽고 그것이 자본론 원전에서 나온 것처럼 잘못 오인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는 자본론에는 있지도 않은 말을 마르크스가 했다고 버젓이 우기는 때도 있다. 공부가 부족한 사람들이 몇 마디 주워듣거나 책 몇 권 읽고 만능박사처럼 행동한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자인 루이 알튀세(Louis Althusser 1918-1990)는 정통마르크스주의를 추구했다. 그래서 그는 유럽에서 마르크스주의 사조가 수정되고 있는데 반대했다. 그는 그러나 막상 마르크스주의를 현실 사회에 적용하려니 뭐가 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현대사회는 더 이상 마르크스주의가 힘을 얻기 힘든 사회였다. 마르크스주의의 이론화와 현실 적용에 고심했지만, 그는 끝내 성과를 얻지 못했다. 어느날 밤 그는 아무리 골몰해내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자 갑자기 자고 있던 아내를 목졸라 죽였다. 정신착란증이 온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더 이상 인류사회를 구원하는 바이블이 아니었다. 그리고 현대사회에 적용 가능한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 억지로 해결책을 모색하다 실패한 알튀세는 애꿎은 아내만 살해해버렸다.

현 집권층의 마르크스 신봉자들은 권력을 손에 쥐고 사회 각 부문에 마르크스주의적 정책으로 영향을 미쳤으나 뭐가 잘될 리 없음은 당연하다. 이념이나 가치, 정책,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그들은 세계화와는 거꾸로 가는 길을 걸었다. 그 결과는 국력 소모와 국론 분열, 국가경쟁력 쇠퇴, 계층 간 분열과 갈등의 누층적 심화였다.

대통령 당선자는 사회 여러 분야에 걸친 이런 분열과 갈등, 불화를 신속히 제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지도자부터 관용과 포용으로 통합의 길을 달려야 한다. 형식적인 포용이 아니라 진정한 포용으로 나라의 새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세 번째 통합은 조직 내부의 통합이다. 우선 한나라당부터 통합해야 한다. 당선자가 나라의 통합을 진정 이루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당내 통합부터 이루어야 한다. 경선때 드러난 당내 분열상을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대승적 차원에서 훌륭하게 봉합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당 일각에서 벌써부터 대권과 당정을 분리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와는 형식적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 국정을 효율적으로 시행해나가자면 안정적인 국회 운영이 필수적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년 총선에서 의석 과반획득이 꼭 이뤄져야 한다. 또 당•정의 일사불란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당과 정부 간 정책 결속이 긴요하다. 그러나 당선자의 정치력 출발점인 당에서 진정한 의미의 통합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의 정치적 구현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박근혜 전 대표가 받아들일 수 있고, 또 다른 공신인 이재오 의원의 의견도 참작하는 절충안을 도출해내야 한다. 그래서 당내 불협화음을 일소하고 일신된 기운으로 당을 추스르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야 총선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확보하고 향후 5년간 국정을 안정되게 운영하는 게 가능하다.

당내 안정을 확보하면 타당과의 협력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상대당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면 집권 내내 정쟁에 빠질 개연성이 크다. 물론 지금까지의 사례를 비추어볼 때 통합신당이 여전히 불화관계를 유지하려 할 공산이 우세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선자와 한나라당은 그들과의 관계를 적대관계가 아닌 선의의 경쟁관계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것이 정치발전을 이루고 나라발전을 이루는 첫걸음이 된다.

통합을 이루고 나면 그 다음엔 각 분야별로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해나가야 한다. 유념할 것은 대선공약을 가급적 지키되 지나치게 거기에 매달려서는 좋지 않다. 국민적 폐해가 심한 교육정책, 경제시책, 남북관계, 안보문제, 대외관계, 주택정책 등을 우선순위로 해서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정책대안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이런 주요 정책을 효과적으로 입안하고 추진할 수 있다면 이명박 정부는 성공한 정부로 평가될 것이다. 그러나 그 첫 단추는 국민 통합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타임즈 최재완 편집인 [choijw47@e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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