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에 몰린 국민연금, 산은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입력 2017-04-13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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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관리는 사실상의 `제로섬 게임'..뺏고 뺏기는 전면전 예고

대우조선해양의 P플랜(회생형 단기 법정관리) 돌입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 회사의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이들은 대우조선이 P플랜에 들어가면 은행의 손실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산은이 애초부터 대우조선의 P플랜에 무게를 두고 추가 지원안을 발표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산은·수은의 실제 손실 규모가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사채권자 집회 부결→금융당국 P플랜 신청→대우조선 관리에서 벗어나는 산은 등 여러 정치적 요소를 고려하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산은·수은, P플랜 가면 담보권 실행? = 삼정KPMG가 자율적 구조조정과 P플랜 상황에서 각 금융기관의 채권 회수율을 계산한 결과 산은과 수은은 P플랜 시 채권 회수율이 각각 66.2%, 53%로 국내은행(20.6%), 회사채·기업어음(10%)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특히 수출입은행은 P플랜 회수율이 자율적 구조조정 시 회수율(43%)보다 10%포인트 높았다. 다른 채권기관이 P플랜으로 갈 경우 적게는 15%포인트(산은)에서 많게는 40%포인트(회사채)까지 회수율이 떨어지는 것과 비교된다. P플랜에서 일부 선주가 선수금환급보증(RG) 반환을 요구하면 건조 중이던 선박이 담보로 잡혀 회수 예상 금액도 늘어나는 것이다. 수은의 RG 규모는 8조7000억 원에 달하는 수준이다.

특히 산은과 수은은 2015년 대우조선 부실화 이후 신규 자금을 투입하면서 대우조선 공장과 비업무용 자산 등을 담보로 잡았다. 2015년 6월 반기보고서와 2016년 12월 사업보고서를 비교하면 산은과 수은의 대우조선해양 담보 설정 규모는 2조 원대에서 5조 원 이상으로 약 3조 원 가까이 늘었다.

이에 대해 정용석 산은 부행장은 “담보를 새로 잡은건 사실이지만 이는 우발채무자들이 담보를 마구잡이로 집행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한 차원”이라며 “2018년 이후 대우조선 정상화 과정에서 담보를 매각하게 되면 해당 금액을 회사 운영자금으로 쓸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산업 피해 59조 원이라더니…RG콜은 겨우 8척? = 정부는 대우조선이 유동성 지원을 받지 못하고 4월 말 부도를 맞으면 국내 산업에 미치는 피해가 59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측했다. 특히 건조 중인 선박 114척 중 96척은 계약서 상 빌더스 디폴트(선박 건조계약 취소) 가능성이 있어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이 대규모 RG콜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최근 산은이 시중은행과 국민연금에 제공한 삼정KPMG 실사 자료 상에서는 P플랜 시 빌더스 디폴트 우려가 있는 선박을 8척으로 한정했다. 선주사가 취소할 경제적 유인이 있는 선박 40척 중 건조 공정까지 감안해 추린 숫자라는 설명이다. 여기에는 씨드릴과 소난골 4척이 포함된다. 산은은 나머지 선박은 건조자금만 적기에 지원받는다면 계약일자 내 인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채권기관 관계자는 “빌더스 디폴트 우려 선박이 8척에 불과한 수준이면 산은·수은 입장에서는 애써 사채권자들을 달랠 필요 없이 담보채권자로서 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P플랜 절차를 밟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독립성 강화 계기냐 대우조선 P플랜 책임자냐=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의 경우는 정부의 대우조선 채무 조정에 동의했을 경우와 이 회사가 P플랜에 돌입했을 때를 비교해 금전적 손익을 따지는 것은 현 시점에서 무의미하다고 보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국민연금이 정부의 대우조선 채무 조정에 동의하면 전체 보유 회사채 3887억 원 중 2682억 원(69%)이 평가 손실날 것으로 내다봤다. 출자전환한 비율 50%를 전액 평가 손실 처리하고 나머지 19%는 대손충당금 적립률로 계산해 나온 추산이다. 반면 대우조선이 P플랜에 들어가면 국민연금은 보유 회사채 중 90% 이상이 평가 손실될 것으로 업계는 관측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는 대우조선 미래 가치의 공정한 평가와 채권단과 사채권자 간의 협의 및 합의가 있는 것을 전제해야 유효한 수치라는 것이 국민연금의 시각이다. 사전 협의 없이 정부가 사채권자에 일방적인 통보를 한 상황에서는 그 어떠한 결정도 투자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들을 고려하지 않은채 국민연금이 정부의 대우조선 채무 조정에 동의하면 대형 기관투자자들은 은행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정책에 동참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 이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독립적 기금 운용 원칙을 뿌리째 흔들리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은 정부의 대우조선 채무 조정에 최종 동의하지 않을 경우 독립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의 국민연금 태도는 사실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찬반 여부를 떠나 정부 정책에 귀속되지 않는 대립적 구도가 옳은 방향이란 뜻이다.

물론 채무 조정 비동의가 대우조선 파산으로 이어지면 국민연금이 해당 단초를 제공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대우조선의 부실화 원인과 관리의 책임이 해당 회사의 최고경영자, 금융당국, 산은에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화살의 방향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민연금에 정통한 관계자는 “기금운용본부는 정부가 ‘국민연금에 달렸다’는 식의 주장에 대해 불편해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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