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대선 테마주 투자자는 ‘정경유착’을 바라는가

입력 2017-03-3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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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 자본시장부장

왕조가 바뀌면 수도도 바뀌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우리 역사를 봐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뒤 1394년(태조 3년) 한양천도(漢陽遷都)를 한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기존 수도인 개경의 지덕(地德)이 쇠했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 살아남은 고려 왕족과의 반역을 막고 이들의 권력을 약화하기 위한 속내였다.

그 시기, 정치권(?)만큼 부산히 움직였던 곳은 ‘상권’이었다. 고려의 충신 최영을 처형할 때 항의 차원에서 동맹 철시(撤市)를 했던 개경의 상인들이었지만, 눈치가 빨랐던 일부는 새로운 수도로 지목된 한양으로 터전을 옮겼다. 그들과 뜨내기 상인들이 자리 잡은 곳이 지금의 청계천 일대다.

하지만 왕자의 난으로 수도를 다시 개경으로 옮기는 굴곡을 겪으면서 한양이 조선의 수도로 위치를 확고히 한 것은 결국 태종 때인 1405년이었다. ‘개경이냐, 한양이냐’는 갈림길에서 정보가 빨랐던 자에게 새로운 수도는 부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고, 개경 상권의 몰락과 함께 부(副)의 흐름은 세대교체를 맞게 됐다.

돈은 과거나 현재나 권력의 최상층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돈의 흐름이 좌우되는 방향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익을 얻고자 하는 집단들은 그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따라서 19대 대선을 앞두고 기승을 부리고 있는 ‘대선 테마주’도 이 같은 맥락에서 해석해보고자 한다.

대선 테마주가 본격화한 것은 2002년 16대 대선 때다. 당시 ‘행정수도 이전 테마주’가 등장한 것은 앞서 거론한 조선 초기 수도 이전 상황과 닮아 있어 아이러니하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도 이전 공약과 관련해 충남을 기반으로 한 계룡건설 등이 주목을 받으며 한때 증권가가 들썩였다. 이어 2007년 17대 대선 때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운하 공약에 다수의 토목건설주가 급등하기도 했다.

성격상 대선 테마주는 크게 ‘인맥’과 ‘정책’으로 나뉜다. 과거에도 인맥주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공약의 혜택을 보는 종목을 예상하고, 다시 해당 후보자의 대선 승리 확률과 연동하면서 주가가 움직이는 정책주가 주류였다.

이런 분위기가 확 바뀐 것은 18대 대선부터다. 정책주는 찾기 어려워졌고, 변질된 인맥주만 넘쳐났다. 후보자의 사돈의 팔촌이 대표를 하고 있다면 그 회사는 ‘○○○ 테마주’로 편입됐다. 일면식이 없는 고등학교 동창이 사외이사라는 이유만으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 같은 분위기는 19대 대선으로 옮겨와 더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인맥이 해당 종목의 기대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배경은 무엇일까. 정책주와 달리, 인맥주는 해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인맥을 바탕으로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바로 청탁과 특혜로 이어지는 ‘정경유착’을 뜻한다.

그러나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벌써 반년이다. 더 이상 청탁으로 인한 사업 특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지금은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추문에 휩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정사상 첫 파면 대통령이 된 데 이어, 검찰에 구속까지 된 상황 아닌가.

금융당국의 책임도 있겠지만, 최종적인 책임은 역시 종목을 선택한 투자자들에게 돌아간다. 인맥으로 특혜를 기대한다는 자체가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을 투영한다. 테마주 바람을 타고 자사주를 팔아 한몫을 챙기는 대주주들의 움직임은 벌써부터 포착되고 있다. 대주주의 대량의 지분 매각은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고, 피해는 결국 투자자들이 보게 된다.

유력 대선 후보자와 회사가 관계없다고 양심공시를 한 회사가 벌써 26곳이나 나왔다. 그러나 이 같은 공시에도 이들 회사 중 절반가량은 오히려 주가가 더 올라갔다고 한다. 정치테마주들의 결말은 언제나 급락으로 끝났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나만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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