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지금] 브렉시트: 역사적 오판!

입력 2016-07-06 10:52수정 2018-02-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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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 세르비아 대사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고 했다. 또 인간은 ‘이성을 가진 동물’(ZOON ECHON LOGON)이라고 했다. 인간은 그러나 이성 외에 분노, 증오, 공포, 편견, 오만 등 수많은 감성을 가진 동물이다.

인간은 매일 일어나는 사소한 사적인 일뿐만 아니라 공적인 중요한 결정을 마음속에 감성적으로 이미 결정한 뒤 이성적으로 이를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

인류 역사의 변천을 뒤돌아보면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이를 증명한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인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는 역사적 사건이다. 브렉시트가 가져올 경제적, 정치적 후폭풍에 대한 전문가들의 우려의 목소리는 듣지 않았고 믿지 않았다. 유럽연합 탈퇴 시 일자리 100만 개가 삭감될 것이라는 경제전문가들의 경고도 소용없었다. 국민과 국가의 장래보다 자신들의 정치 생명이 더 중요한 선동적인 정치가들의 언행이 오히려 더 어필했다. 특히 노인층, 저소득층, 저교육층의 브렉시트 지지는 높았다. 기존 정치에 대한 자신들의 실망과 분노를 표출한 이들은 브렉시트 후 가장 많은 타격을 받을 계층이기도 하다.

브렉시트가 결정된 후 파운드화 폭락과 외국 기업에서 일자리를 잃게 될 현실, 브렉시트 추진자들의 거짓 약속이 속속 드러나자 ‘우리가 무슨 짓을 했나’라고 후회하며 가슴을 치는 국민이 늘고 있다. 이미 400만 명 이상이 재투표 청원에 서명했고 브렉시트 반대 시위가 확대되고 있다. 영국 사회의 세대 간, 계층 간, 지역 간 갈등이 심화되고,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독립 추진 문제도 다시 부각되었다. 2014년 스코틀랜드의 독립 국민투표에선 영국에서 탈퇴하면 유럽연합으로부터 탈퇴하게 된다는 잔류파의 명분이 결정적이었으나, 이제 그 반대가 되었다. 영국으로부터 탈퇴해야 유럽연합에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은 미래를 향한 역사적인 갈림길에 섰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후 가슴을 치는 것은 국민뿐이 아니다. 자신의 정치생명을 위해 국민투표 카드를 커냈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나, 브렉시트에 앞장서 온갖 선동을 했던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이나 경악한 건 마찬가지다. 캐머런 총리는 유럽연합에 회의적인 집권 보수당 내부의 알력을 잠재우기 위해, 보수당이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브렉시트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재집권에 성공한 캐머런 총리는 브렉시트 카드를 유럽연합에서 영국의 특별 지위 확대 협상용으로 사용하며 영국에 거주하는 유럽 이민자들에 대한 사회보장 축소, 영국은행의 자율권 확대 등 더 많은 자율권을 인정받았다. 그 결과를 가지고 캐머런 총리는 유럽연합 잔류를 국민들에게 설득하려 했으나, 2016년 6월 23일 실시된 국민투표 결과는 탈퇴 51.9%로 나왔다. 캐머런 총리의 완전한 오판이었고, 총리직 사퇴는 물론 영국의 분열과 유럽에 대혼란을 가져온 영국 최악의 총리 중 한 명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브렉시트에 앞장섰던 존슨 전 런던시장 등 브렉시트 추진자들은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할 경우, 유럽연합에 매주 지불하는 3억5000만 파운드를 국민건강 증진에 사용할 것이며, 유럽 출신 이민자를 대폭 줄이고, 탈퇴 후에도 영국의 유럽연합 단일 시장 접근이나 경제발전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존슨 전 시장은 투표가 근소한 차이로 유럽연합 잔류로 결정될 것으로 예상했고, 실제로 원했던 것은 브렉시트가 아니라 정적인 캐머런 총리를 축출하고 후임 총리가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국민투표 후 닥쳐온 현실에 경악한 그는 차기 총리 후보에 나서지 않겠다고 물러섰다.

영국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유럽 대륙과 다른 특유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그동안 영국은 유럽연합에서 가장 까다로운 회원국이자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가장 많은 ‘특별 지위’(Opt-Outs)를 인정받았다. 1984년 유럽정상회의에서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책상을 치며 “I want my money back!”이라고 촉구한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이후 영국은 유럽연합에 지불한 분담금 중 3분의 2를 각종 지원금으로 다시 회수하는 특권을 누렸다. 영국은 유럽 회원국 간 자유통행을 보장하는 ‘셍겐 조약’에도 가입하지 않았으며, 유럽 단일 통화인 ‘유로’도 도입하지 않았다.

영국 국민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베를린 정가는 비상사태에 돌입한 듯 보였다. 유럽 전체가 앙겔라 메르켈 총리만 바라보는 듯했다. 사태를 해결해야 할 곳이 유럽연합의 본부인 브뤼셀이 아닌 베를린이라는 것이 부각되었다. 브렉시트 발표 다음 날 베를린에서 유럽연합 창설 6개국(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의 외무장관 회의가 개최되고, 6월 27일 메르켈 총리는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회동 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렌치 이탈리아 총리와 함께 6월 28~29일 유럽연합 특별정상회의에 대한 사전 조율을 했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등 여러 정상들은 장기간 불확실성이 가져올 혼란과 유럽 탈퇴를 촉구하는 극우파들의 선동을 우려하며 영국의 빠른 퇴출을 원한다. 반면, 영국에 2500개의 독일 기업이 진출하여 40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독일의 입장은 다르다. 독일의 3대 교역국인 영국에 생각할 여유를 조금 줘야 한다는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 정부의 대연정 파트너인 사민당 측의 반발과 유럽 정상들의 반대 의견을 의식, 영국은 가능한 이른 시일 내에 탈퇴서를 제출해야 하며 영국이 원하는 ‘건포도만 빼먹는’(Rosinenpickerei)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강경한 공식 메시지를 전달했다. 또한 유럽 단일 시장 접근은 유럽연합의 기본정책인 ‘사람, 상품, 자본, 서비스’의 자유이동을 받아들일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의 측근인 알트마이어 총리실 장관은 7월 2일자 슈피겔지 인터뷰에서, 브렉시트 후폭풍에 대한 현재 영국 내의 진지한 정치적 논의와 그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현명한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독일은 유럽연합에서 영국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브렉시트에 대한 영국의 최종 입장 변화를 희망한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현재 영국에선 브렉시트를 되돌려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첫째, 브렉시트 추진자들이 거짓 정책으로 국민들을 속인 사실이 판명되었으며, 둘째, 거짓에 속아 브렉시트에 찬성한 수백만 명의 국민이 입장을 바꿨으므로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이를 반영해야 하며, 셋째, 국민투표는 정치적 제안이지 국제법상 구속력을 갖는 법적인 결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다음 정상회의인 9월 중순까지 공식 탈퇴서를 제출하라는 입장이지만, 영국은 전혀 서두를 생각이 없다. 리스본 조약 50조에 의하면, 회원국이 탈퇴서를 공식으로 제출한 후 2년간 협상을 거쳐 유럽연합과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도록 되어 있다. 만약 2년 내에 협상을 완료하지 못하면, 자동적으로 탈퇴되거나 모든 회원국의 만장일치 찬성 시 협상이 연장될 수 있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번복할 것인지, 신임 총리가 언제 공식 탈퇴서를 제출할 것인지, 협상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모든 것이 불분명한 상황이다. 유럽의 재정위기, 난민 사태에 이어 영국의 탈퇴까지 더해지면 유럽연합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는 개혁 논쟁이 확대되고 있다.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모든 민주국가 국민에게 주는 교훈은 있다.

첫째, 정치가의 선동적이고 허황된 공약은 믿지 말라.

둘째, 언론은 정치 선동을 부추기지 말고 정확한 팩트를 국민에게 전달하라.

셋째, 여론조사를 믿지 말라. 부정적 의견을 가진 자는 속마음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

넷째, 민주국가에서 국민의 의사를 직접 묻는 것은 당연하지만, 대중은 국가의 장래보다 눈앞에 보이는 자신의 이해관계가 우선이다.

다섯째, 진정한 정치가는 국민이 왜 당장의 이익보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 결정해야 하는가를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국민이 잘 하기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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