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드디어 시작된 3월의 광란①

입력 2016-03-2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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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교수.
1982년, UNC 대학농구팀을 전미 챔피언으로 이끌었던 역전 결승골의 주인공은 전 세계 농구의 전설이 된 마이클 조던이었다. 또한 예술로 불렸던 ‘스카이훅 슛’을 앞세워 UCLA 대학농구팀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NBA 통산 최다득점 기록을 세운 선수는 카림 압둘자바였다. 굳이 농구 팬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이 전설적인 선수들은 바로 3월의 광란이 배출한 슈퍼스타들이었다.

매년 그랬듯 따뜻한 3월이 돌아오면 ‘3월의 광란(March Madness)’ 역시 다시 찾아온다. 3월의 광란이란, 미국 내 대학 스포츠를 총괄하는 미국대학체육협회인 NCAA(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의 대학농구 챔피언십 토너먼트를 뜻한다. NCAA의 3월의 광란에는 각 지역 콘퍼런스에서 토너먼트를 거쳐 확정된 우승팀과 NCAA의 선발위원회에서 선정한 대학농구팀 68개 팀이 4개조로 나뉘어 12일간의 토너먼트에 참여한다. 그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광란’이라 불린다. 따라서 3월의 광란은 미국 대학농구 챔피언십 토너먼트를 뜻하지만, 그 인기와 상징성은 미국의 4대 프로스포츠조차 쉽게 넘볼 수가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3월의 광란은 프로농구인 NBA의 플레이오프나 결승전과는 달리 매 경기 단판 진검 승부로 결과가 결정되는 토너먼트 경기다. 따라서 모든 팀들은 사력을 다해 경기에 임하며 여기에 덧붙여지는 대학선수들만의 패기, 열정, 젊음, 스피드는 같은 농구라 할지라도 NBA 경기와는 전혀 다른 경험과 재미를 관중들에게 선사한다. 또한 NCAA의 1부리그에 해당하는 ‘디비전1’에만 30개가 넘는 콘퍼런스에 300여개의 대학농구팀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를 3부리그인 ‘디비전3’까지 확장할 경우 대학농구팀의 수는 1000여 개가 넘게 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엄청난 경쟁을 뚫고 3월의 광란에 진출한 68개의 학교들이 제공하는 경기의 수준은 의심할 여지 없이 최고 수준일 것이다. 따라서 최고 중의 최고들만 격돌하는 3월의 광란 토너먼트 무대를 밟았다는 것만으로도 해당 학교와 선수는 물론 이를 목도하는 관중들 모두에게까지 충분히 영광스럽고 특별한 경험이 된다.

물론, 우리에게도 이와 유사한 추억이 있었다. 바로 1990년대 대한민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수많은 오빠부대를 양산하던 ‘농구대잔치’다. 농구대잔치는 대학 아마추어 팀과 실업팀으로 구성되었지만, 특히 대학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무엇보다 고려대와 연세대의 라이벌전은 매번 구름 관중을 불러 모았고 수많은 명승부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1997년 프로농구가 출범하고 실업팀들이 프로로 전환하면서, 대학팀과 실업팀이 함께 실력을 겨루며 농구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농구대잔치도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대학선수들의 화려했던 플레이와 젊음과 패기는 물론,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 역시 어느새 사라지게 되었다.

서로 다른 두 나라에서 진행되었지만, 농구와 아마추어 선수 중심이라는 공통성이 존재했던 두 스포츠 이벤트. 이 중 하나는 스포츠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 여전히 살아남아 프로 스포츠보다 더 높은 인기를 얻고 있고, 또 다른 하나는 ‘대학농구리그’라는 이름으로 명색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예전의 명성과 인기는 역사의 뒤안길로 잊혔다. 따라서 본 칼럼에서는 3월의 광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 생존력과 독특한 경쟁력을 향후 몇 차례에 걸쳐 분석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를 공유해 국내 대학농구 발전을 위한 시사점들을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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