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구옥희 LPGA 우승 포문ㆍ1998년 박세리 ‘맨발투혼’으로 정상
한국 골프의 르네상스 시대다. 미국과 일본에서 활동하는 국내 남녀 프로골프 선수들은 올 시즌 39차례의 우승 소식을 알려왔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15승을 비롯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1승,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은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와 일본프로골프투어(JGTO)에서는 각각 15승과 8승을 장식했다. 눈에 띄는 건 여자 선수들의 활약이다. 올 시즌 39차례의 우승 중 30승은 여자선수들이 책임질 만큼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한국 여자 골프가 르네상스 시대를 맞기까지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1988년 고(故) 구옥희의 LPGA 투어 스탠더드 레지스터 클래식 우승으로 시작된 한국 선수들의 우승 행진은 1994년과 1995년 고우순(51)이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지만 국민적 관심을 받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금융 위기로 온 국민이 실의에 빠져 있던 1998년, 박세리(38·하나금융그룹)가 LPGA 투어에 데뷔하면서 기업과 미디어, 국민적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박세리는 그에 보답하듯 데뷔 첫해 4차례의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신인왕을 차지했다. 특히 US여자오픈 마지막 날 연장 승부에서 보여준 맨발 투혼은 한국 스포츠 역사를 통틀어 가장 빛나는 명장면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박세리의 맨발 투혼은 한국 골프 르네상스 시대의 서막이었다. 17년이 지난 올 시즌 한국 여자 선수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이 됐다. 시즌 개막전 코츠골프 챔피언십의 최나연(28·SK텔레콤) 우승을 시작으로 박인비(27·KB금융그룹)의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우승까지 15승을 합작,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특히 박인비는 시즌 5승을 달성하며 다승왕과 베어트로피(최저타수상)를 수상했고, 커리어 그랜드슬램과 명예의 전당 입회 조건 충족이라는 두 토끼를 잡았다. 김세영(22·미래에셋)은 3승으로 신인상을 거머쥐었고, 이보미(27·코카콜라재팬)는 JLPGA 투어 7승을 쓸어 담으며 일본 남녀 투어를 통틀어 가장 많은 상금을 번 선수가 됐다.
이처럼 올 시즌 유난히 빛난 한국 여자선수들의 활약 뒤에는 물오른 ‘세리키즈’와 ‘리틀 세리키즈’의 절묘한 조화가 있었다. 대표적 ‘세리키즈’인 박인비와 이보미는 미국과 일본 무대에서 각각 5승과 7승을 일궜고, 신지애(27·2승), 안선주(2승), 최나연(이상 28·2승)은 6승을 합작하며 ‘세리키즈’ 전성시대를 입증했다. ‘리틀 세리키즈’ 김세영과 전인지(21·하이트진로)는 각각 3승씩 책임졌고, 김효주(20·롯데)도 1승을 보탰다.
결국 ‘세리키즈’ 박인비와 이보미는 미국과 일본 무대를 이끌었고, ‘리틀 세리키즈’ 김세영, 전인지, 김효주 등은 세계 골프 판도를 흔든 셈이다. 특히 KLPGA 투어 5승을 차지하며 4관왕에 오른 전인지는 미국과 일본 투어에 비회원으로 출전, 메이저 대회만 3승을 달성하는 진기록을 새로웠다.
30년 가까운 LPGA 투어 도전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도 한몫했다. 많은 선수들의 성공 사례를 통해 정보와 노하우를 공유, 우승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또 국내 기업의 적극적인 후원도 빼놓을 수 없다. 롯데, 미래에셋, 볼빅, 비씨카드, 하나금융그룹, 하이트진로, 한화, 호반건설, CJ오쇼핑, JDX, KB금융그룹, NH투자증권, SK텔레콤 등 13개 기업은 올 시즌 LPGA 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을 후원했고, 기아자동차, 롯데, 하나금융그룹, JTBC 등은 메인타이틀 대회를 열어 선수들에게 보이지 않는 긍지와 자부심을 안겼다. 이들 기업은 15승의 숨은 공신으로서 역사적 순간을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