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호 (사)케이썬 이사장/미래학회 고문

남미의 움직임은 더 빠르다. 칠레를 중심으로 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자국의 언어와 맥락을 반영한 독자적인 거대언어모델(LLM)인 ‘Latam-GPT’ 개발에 착수하며 기술적 독립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글로벌사우스 국가들 ‘소버린 AI’ 추구
데이터가 새로운 원유에 비유되고, AI가 국력을 결정하는 시대다. 그러나 이러한 디지털 대전환은 새로운 패권주의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산업혁명과 제국주의라는 역사적 경험은 미국과 중국, 글로벌 사우스를 비롯하여 전세계에 ‘데이터’와 ‘지능’의 새로운 제국주의, 식민주의의 등장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깊게 하고 있다. AI 기술 경쟁은 미·중 패권 경쟁과 맞물려 누가 ‘데이터’와 ‘지능’을 독점하고 종속당할 것인가 하는 실존적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어느 한편에 줄 서기보다는, 사안별로 협력 파트너를 나누고, 핵심 인프라는 자국 또는 지역 연합 차원에서 통제하자는 담론이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는 “누구 편이냐”는 질문보다 “우리 데이터와 AI 인프라는 누가 통제하느냐”에 더 주안점에 두고 있다. 소버린 AI는 바로 이 디지털 비동맹, 다동맹 전략의 핵심 수단이 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사우스의 디지털 비동맹, 소버린 AI 흐름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국가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다. UAE는 막대한 오일머니를 무기로 가장 공격적으로 ‘소버린 AI 패키지’를 수출하고 있다. 얼마 전에 끝난 G20 정상회의에서 UAE는 아프리카 전역의 AI 인프라·서비스 확산을 위한 10억 달러 규모의 ‘AI for Development’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UAE에 비해 한국의 글로벌 사우스와의 AI 협력은 아직 소규모의 공적개발원조(ODA) 수준이다. 전자정부,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 디지털 역량 강화 사업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UAE처럼 ‘국가 단위의 AI 데이터센터+클라우드+LLM+교육+투자’가 한 번에 묶인 거대 패키지 딜은 없다.
글로벌 사우스는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지 않으면서도 자국의 AI 역량을 키워줄 파트너를 찾고 있다. 한국은 강대국처럼 군사·안보 패권을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반도체·통신·제조·문화 콘텐츠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한, 매력적이면서도 전형적인 ‘중견국(middle power)’이다. 한국은 ‘자체 LLM 보유국’이라는 희소성과 ‘중견국으로서의 신뢰성’을 결합하여, UAE의 자본력이나 중국의 인프라 공세와는 차별화된 ‘소버린 AI’로서의 K-AI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