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_박덕배의 금융의 창] ‘사천피’ 안착, 자금선순환이 관건이다

금융의 창 대표/정책평가연구원 비상근연구위원

구조개혁해 신뢰 다져야 지수 안정
투명한 거래로 개인투자 유도하고
‘회수시장’ 키워 투자금 끌어들여야

코스피 지수가 지난달 4000선을 넘어서며 ‘4000 시대’를 예고했다. 최근 며칠간 3850 전후로 후퇴했지만, 숫자가 던진 의미는 여전히 크다. 그럼에도 개인투자자의 체감은 정반대다. “지수는 고점인데 내 계좌는 저점”이라는 말이 다시 나온다. 이는 단순한 박탈감이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비대칭이 만들어낸 결과다.

최근 지수 상승은 반도체·인공지능(AI)·이차전지 등 소수 대형주에 집중됐다. 외국인과 기관 자금은 상위 20개 종목에 몰렸고, 지수는 시장 전체라기보다 이들 종목의 평균곡선을 따라가고 있다. 반면 시장의 절반 이상은 박스권에 머물러 있고, 적지 않은 종목은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지수와 시장 체감이 분리되는 현상이 구조화되고 있는 것이다.

개인투자자는 대부분 코스닥·중소형주에 투자하지만, 시장 유동성은 이미 대형주·상장지수펀드(ETF) 중심으로 이동했다. 최근 고금리 기조 속에서 장기투자의 기회비용이 커졌고 개인투자자의 포지션은 단기매매 중심으로 이동했다. 여기에 공매도 불신과 정보 비대칭이 결합되면서 개인 자금은 고립되고, 회전율은 높지만 평균 수익률은 낮은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위험이 시장 참여자 간에 분산되지 못한 채 개인에게 집중되면서, 부담과 피로가 계속 축적되고 있다.

국내 기관투자자 역시 장기 자금 공급자가 아니라 단기 성과 중심으로 움직이며 시장 안정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기관까지 해외 투자 비중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개인만 변동성을 떠안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증시 내부의 선순환은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개인 자금이 미국 빅테크 중심 시장으로 이동한 것 또한 이러한 환경의 반영이다. 정부는 “자본시장의 선순환”을 강조하지만 정책은 여전히 보증·대출 중심의 간접금융에 머물러 있다. 기업공개(IPO)와 유상증자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상당수가 부채상환·운영자금 성격에 머물러 성장투자로 이어지지 않는다. ‘회수시장(Recycling Market)’이 취약해 ‘성장 → 회수 → 재투자’의 고리가 끊겨 있고 위험은 개인에게 집중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자본시장에서 의도한 자금의 선순환이 나타나기 어렵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지수를 올리는 정책이 아니라 증시가 제 기능을 회복하도록 만드는 구조 개혁이다.

첫째, 증시의 자금조달 기능을 복원해야 한다. 상장 이후 기업이 증시에서 성장자금을 조달하고 투자자가 성과를 공유할 수 있어야 자금이 시장 내부에서 돌기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성장성과 투명한 자금 사용 계획을 전제로 한 생산적 조달 구조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둘째, 개인투자자가 안심할 수 있는 거래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공매도 불신, 정보 비대칭, 내부자 거래에 대한 실시간 공시와 제재 강화는 가장 취약한 참여자의 신뢰 회복에 필수적이다. 개인이 시장에서 배제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유동성 기반 자체가 약해져 지수 상승도 지속되기 어렵다.

셋째, 회수시장을 키워야 한다. 코스닥·K-OTC(장외시장)·인수합병(M&A) 시장 활성화는 투자자금이 다시 국내 증시로 돌아오게 만드는 핵심 장치다. 상장 이후 투자금을 회수할 통로가 막히면 자금은 자연스럽게 해외시장이나 부동산 등 다른 자산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넷째, 장기투자 유인을 확대해야 한다. 장기 보유 세제 혜택,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퇴직연금 기반 ETF 투자 촉진은 시장 안정성과 기업 성장 기반을 강화한다. 장기 자금이 뿌리내릴 때 기업 가치가 실적으로 연결되고, 시장도 단기 변동성에 덜 흔들린다.

지수 4000은 결과이고, 구조가 원인이다. 숫자가 다시 밀려났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자금이 어디에 머무는가이다. 기업이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자가 공정하게 보상받으며, 개인이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는 시장이 만들어질 때 비로소 선순환이 가능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코스피 5000”이라는 구호가 아니라, 지수보다 구조, 숫자보다 신뢰라는 방향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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