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前 한국경제연구원장
보호주의는 양국소비자 이익 줄여
혁신쇠퇴로 관세정책 지속 어려워

지난 14일 관세 및 안보에 관한 한미 간 협상의 잠정 결과물인 합동설명자료가 나왔다. 관세에 대해 보면, 자동차 및 그 부품과 목재 품목에 대한 관세를 15%로 낮추고, 반도체와 그 제조 장비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불리하게 하지 않으며, 부과 예정인 의약품에 대한 관세도 15%를 초과하지 않는다. 또 제네릭 의약품과 그 원료, 특정 천연자원 등에 대한 관세를 없애고, 철강에 대한 관세는 50%를 유지한다는 것 등이 골자다.
관세 논의에 앞서 그동안 미국이 무역에서 손해를 보았는지 살펴보자. 1971년에 브레턴우즈 체제가 막을 내리면서 금에 연동되던 미국 달러는 공식적인 기축통화 지위를 잃었다. 그러나 지금도 달러는 미국의 막강한 경제력에 힘입은 신뢰를 바탕으로 사실상 기축통화 기능을 하고 있다. 화폐는 교환 수단이지만 그로부터 파생되는 구매력을 가지므로 미국은 기축통화 지위를 이용, 많은 달러를 발행하여 외국에서 자원을 사들이면서 큰 이익을 봐 왔다. 물론 그 한계는 있다. 달러를 몽땅 찍어 외국 자원을 산다면 무역적자가 누적되어 신뢰를 잃고 기축통화의 지위를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역에서 미국이 다른 나라들로부터 착취당했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
이제 수입품에 대한 관세로 수입량을 줄이는 조치나 수입량을 직접 제한하는 쿼터(quota) 등의 보호무역이 나라 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살펴보자. 무역의 일차적 목적은 수입이며, 공짜로 주지 않으니 수입하려면 수출해야 한다. 즉 무역은 한국이, 한국에는 없거나 자체 생산하기에는 미국보다 더 큰 비용이 드는 제품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하고, 미국에는 없거나 자체 생산하기에는 한국보다 더 큰 비용이 드는 제품을 미국에 수출함으로써 서로 이익을 얻는 행위다. 그런데 보호무역은 이처럼 서로 이익을 볼 수 있는 거래 기회를 제한하므로 한국과 미국이 모두 손해를 본다.
미국이 현대차에 15%의 관세를 매기면 현대차의 미국 내 공급이 줄어 가격이 올라간다. 현대차의 미국 내 가격이 올라가므로 미국산 자동차의 현대차에 대한 상대가격은 단기적으로 낮아진다. 따라서 미국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늘어 미국 자동차 회사는 이익을 보고 고용도 늘며 노동자 임금도 올라간다. 관세가 미국 경제에 이익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 자동차 회사와 그 노동자들이 누리는 이익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에 띄지 않는 장기적 손실이 단기적 이득을 압도하고 나라 전체에 손해를 끼친다. 우선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늘어 가격이 올라가고 생산량도 늘어나지만, 늘어난 생산량이 줄어든 현대차 수입량에는 미치지 못한다. 미국 내의 미국산 자동차와 현대차 가격이 모두 올라 총 수요량이 이전보다 줄어들기 때문이다. 즉 미국 사람들의 자동차 구매량이 줄어 이들이 자동차를 사용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감소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손실은 또 있다. 미국 자동차 회사의 고용이 늘고 임금은 오르지만, 다른 산업의 고용은 줄고 쇠퇴한다. 현대차를 수출하여 버는 달러가 이전보다 줄어 한국이 미국에서 수입하는 제품의 수와 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즉 미국의 수출 산업이 타격을 입는다. 그런데 이런 결과는 여러 산업에 흩어져 생기므로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관세에 대응하여 한국이 미국에 자동차 공장을 짓는 것도, 현대차 회사가 생산 비용과 물류 비용 등을 따져 자발적으로 짓는 것이 아니므로, 관세 결과와 유사하다. 현재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나름대로 자원의 효율적 배분 결과라면 추가적 투자는 비효율을 초래하고, 현대차가 버는 달러가 미국이 한국에 수출하는 산업의 제품 수요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미국의 자동차 산업은 이익을 보겠지만, 다른 산업은 쇠퇴하기 때문이다.
더 결정적인 것은 관세나 쿼터 등으로 미국 산업을 보호하면 미국 회사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창조와 혁신을 게을리하여 선도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경쟁력은 문을 닫을 때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활짝 열 때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보호무역은 서로 이익을 보는 거래 기회를 줄임으로써 무역 당사국 모두에게 손해를 끼친다. 그래서 미국이 관세 정책을 장기간 지속하기 어려우며, 이는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려는 국제정치적 이유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마지막으로 강조할 사항은 미국이 보호무역을 하더라도 한국은 자유무역을 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점이다. 이는 무역의 일차적 목적이 수입이라는 사실로부터 명백해진다. 물론 미국이 장기간 보호무역을 고집하면 무역량이 줄어 양국이 지금보다 더 못살게 된다. 그래서 국가 간 분쟁을 줄이고 모두 다 더 풍요롭게 사는 길은 자유무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