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게 없어요”···피해자가 할 수 있는 건 우는 것뿐 [청년·서민 때리는 전세사기 후폭풍 ③]

입력 2024-03-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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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밀집 지역 모습 (연합뉴스)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경매에 넘어간 집을 낙찰받더라도 '최고가 우선매수제' 빈틈을 파고든 입찰자들이 낙찰가를 시세보다 높여버리는 등 사기수법도 진보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 그 이후, 추가 피해를 겪은 A씨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누군가 낙찰가를 높일 목적으로, 고의로 경매에 참여하는 상황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보던 일이다. 미디어에서는 악인을 응징하는 방식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대상이 전세사기 피해자라면 이야기는 전혀 다를 것이다. 경매에서 선순위를 차지해 이득을 볼 목적으로 전세사기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일이다.

"결혼을 꿈꿨지만, 빚만 잔뜩 가지고 결혼을 할 수 있을까요. 내가 쓴 돈도 아닌데 평생 빚만 갚고 살아야 하는 현실에 놓였습니다. 아예 뭔가를 꿈꾸지도, 바라지도 못하게 됐습니다. 요즘은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드네요."

A씨는 지금의 심정을 이같이 밝혔다. 전세사기를 당한 A씨는 보증금도 회수할 수 없는 후순위 임차인이다. A씨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우선매수권을 사용해 살던 집을 낙찰받는 것이었다. 결국 셀프 낙찰을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난감한 일을 겪었다. 시작은 경매를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어느 날 아침,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어요. 누구인지 물으니 경매에 참여할 사람이라면서 대뜸 '이 집을 살 거냐'고 묻더라고요. 살 거라고 답했더니, '1억5000만 원이면 괜찮냐'고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제가 이 집 경매에 우선매수권을 쓴 것을 알고, 제가 생각하는 낙찰가 상한선을 물어본 거죠. 저를 떠보는 듯한 질문에 '너무 힘드니 왠만하면 경매에 들어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A씨가 이 집을 낙찰받기 위해 우선매수권을 사용할 것이라는 것은 물론 개인정보까지 알고 걸려온 전화였다. 해당 번호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멀리 떨어진 지역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가 나왔다. 걸려온 전화의 출처를 알자 의심은 더욱 깊어졌다.

의심의 정당성은 결과로 확인됐다. A씨의 집 최저 매각가는 1억2500만 원가량. 1차에서는 2억 원, 2차에서는 1억7000만 원이었지만 모두 유찰됐다. 1억3~4000만 원에서 낙찰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집의 낙찰가는 무려 매각가보다 4~5000만 원 높은 1억7000만 원으로 결정됐다. 입찰자들이 써낸 가격은 대부분 1억2~3000만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누군가 고의로 높은 입찰가를 적어낸 것으로 보이는 지점이었다. 우선매수권은 최고가 낙찰이 전제이기 때문에 집을 사려고 마음먹었던 A씨는 높은 낙찰가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경매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 이 집은 아무리 가격이 높아도 1억5000만 원을 넘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매각가는 물론 예상한 시세보다도 더 높은 낙찰가가 정해진 거죠. 전세사기 피해자이니 금전적 여유가 없는 것을 알았을 테고, 제가 우선매수권을 포기할 만큼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을 써내서 자신이 선순위로 낙찰을 받으려 했던 거에요. 제가 포기하기 않고 낙찰을 받아도 그 사람은 잃을 게 없는 거고요. 만약 대금을 마련하지 못해 포기하면 차순위 가격인 1억3000만 원에 집을 가질 수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 이득이 되겠죠"

A씨의 사례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전세사기 피해자 단체를 이끌고 있는 B씨는 "애당초 전세사기 피해자 우선매수권 제도가 마련됐을 때 반쪽짜리 정책이라고 비판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며 "우선매수권 사용 기준이 최고가라면 누구든 이 점을 악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미 예상했고, 은행이 채권을 회수할 목적으로 고의 고액 입찰을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A씨와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을 보호할 방법은 없는 상황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A씨의 사례에 대해 "경매 정보에 임차인이 우선매수권을 활용할 것이라는 것이 나와 있어 이를 보고 누군가 이런 일을 벌였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하면서도 "방지 대책을 마련할 사례는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해당 관계자는 "우선매수권 자체가 경매에서는 특별한 권리가 맞고, 예상가격보다 낙찰가가 더 높을 경우 우선매수권을 포기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유를 말했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우선매수권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B씨는 "피해자들이 집을 낙찰받으려는 이유는 단 하나다. 집이 좋거나 갖고 싶어서, 금전적 여유가 있어서도 아니다. 최대한 저렴한 가격에 집을 사서, 나중에 되팔았을 때 보증금의 일부 나마 건지려는 것"이라며 "우선매수권의 최고가 낙찰 원칙을 변경하거나 입찰보증금이라도 상향해 투기꾼의 고의 입찰을 걸러내는 방법도 제안했지만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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