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키즈 김 기자] '제네시스' 브랜드의 원조, 코드네임 LZ를 아시나요?

입력 2015-11-05 10:00수정 2016-09-06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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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고급 브랜드 전략 뒷 이야기는?

1998년, 현대자동차가 야심차게 준비한 고급 세단의 개발이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코드네임 'LZ'로 불리던 이 자동차는 이듬해 1999년 출시 직전까지 적잖은 고민과 막대한 임무를 지니고 탄생하게 됩니다. 바로 '에쿠스'의 시작입니다.

코드네임 LZ는 당시 라인업 최고봉에 자리잡은 다이너스티의 후속 모델입니다.

다이너스티는 일본 미쓰비시와 공동 개발한 2세대 그랜저(미쓰비시 데보네어)를 바탕으로 앞뒤 디자인을 바꾸고 편의장비를 고급화한 모델이죠. 흡사 요즘 그랜저(HG)와 제네시스 사이에 자리잡은 아슬란과 비슷한 맥락이었습니다.

코드네임 LZ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고급차와 견줄 수 있는 명차를 위해 개발됐습니다. 역시 1~2세대 그랜저와 마찬가지로 일본 미쓰비시와 공동 개발에 나섰던 모델이었지요.

▲1세대 에쿠스는 당시 라인업 최고봉이었던 다이너스티의 후속으로 등장했습니다. 국산차 최초의 V8 4.5리터 엔진을 얹고 단박에 현대차는 물론 우리나라 자동차의 플래그십으로 등극했습니다. (사진제공=현대자동차)

현대차는 출시 당시 기본 모델 사양을 V6 3.5ℓ 엔진(시그마)으로 잡고, 고급 모델은 국산차 최초로 V8 엔진(오메가)을 얹어 배기량을 4.5ℓ로 화끈하게 늘려 잡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코드네임 LZ에는 그 어디에도 현대차의 'H' 앰블럼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현대차의 고급차 브랜드 전략은 사실 1990년대에 시작한 셈입니다.

현대차는 글로벌 시장으로 영토 확장에 나서면서 언제나 브랜드 전략에서 주춤했습니다. 독일을 포함한 유럽 명차와 견줄만한 브랜드 역사와 기술이 부족했다는 것인데요. 당시 포드와 GM, 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 메이커는 값싸고 덩치큰 차를 여러대 팔아 수익을 내는 구조였습니다. 이들 역시 현대차와 비슷한 고민에 빠졌지만 해결책은 오히려 간단했습니다.

이들 빅3는 오래토록 유럽에서 자동차 브래드로 명성을 이어온 이들을 거침없이 사들였었지요. 그렇게 볼보와 재규어, 랜드로버, 오펠 등 걸출한 자동차 회사들이 미국으로 팔려갔습니다. 물론 지금은 또 다른 주인이 이들을 차지하고 있지만, 1990년대 미국 자동차 회사들 현대차와 같은 고민에 빠졌던 것이지요.

반면, 현대차는 자체적인 고급차 브랜드를 만들기로 합니다. 이미 일본 토요타가 고급차 브랜드 '렉서스'를 앞세워 미국에 진출했고, 혼다는 '어큐라', 닛산은 '인피니티'라는 브랜드를 출시했거나 준비 중이었으니까요. 고급차 브랜드를 갈망하는 현대차에게 일본 메이커의 프리미엄 전략은 좋은 본보기였습니다.

그러나 에쿠스의 출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미쓰비시에서 들여온 V8 엔진은 잦은 결함에 발목이 잡혔고, 해외에서 독일 명차와 견주기에는 여전히 브랜드 인지도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현대차와 미쓰비시가 공동으로 개발한 고급차를 미쓰비시는 '데보네어'라고 불렀습니다. 사진은 2세대와 3세대 데보네어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1~2세대 그랜저와 비슷한, 아니 거의 똑같은 모습입니다. (사진제공=넷카쇼룸)

현대차가 에쿠스를 개발하던 중 기아산업을 인수하면서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은 또 다시 뒤로 미뤄졌습니다. 에쿠스를 수출 시장에 널리 알려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이 차 이름을 브랜드화하려는 전략도 수정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벤치마킹 대상의 변경은 큰 변곡점이 됐습니다. 2000년대 들어 현대차의 제품 전략은 독일 폭스바겐을 추종하기 시작합니다. 그 배경은 일본 프리미엄 브랜드가 미국에서 기대했던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죠. 반면, 글로벌 톱을 지향하며 소형차 다변화 전략을 앞세웠던 폭스바겐은 당시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렇게 현대차는 폭스바겐의 제품 전략을 참고하기 시작했습니다. 2.0ℓ 직분사 엔진, 듀얼클러치 기어박스, '벨로스터(폭스바겐 시로코)'의 개발 등이 폭스바겐의 제품 전략과 일맥상통한 사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2009년 에쿠스가 2세대(코드네임 VI)로 거듭나면서 현대차는 브랜드 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1세대와 달리 2세대 에쿠스는 독일 명차에 견줘도 모자라지 않는 탄탄한 기술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자 품질에 대한 자신감은 커졌습니다.

특히 폭스바겐이 2000년대 초, 아우디 A8을 베이스로 개발한 고급차 '페이톤' 의 전략은 현대차에게 좋은 참고가 됐습니다. 이 회사는 별다른 브랜드 전략없이 페이톤 하나만으로 북미 고급차 시장에 진출한 것입니다.

▲2세대 에쿠스는 본격적인 북미시장 출사표를 던진, 의미있는 모델입니다. 폭스바겐의 제품전략과 브랜드 계획에 따라 북미 시장에 현대차 브랜드로 등장했습니다. 아쉽게도 기대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차는 훌륭했으나 현대차라는 브랜드에 발목이 잡힌 셈이지요. (사진제공=현대자동차)

현대차 역시 별다른 고급차 브랜드 없이 에쿠스와 제네시스를 북미 시장에 출시합니다. 토요타나 혼다처럼 고급 브랜드를 만드는게 아니라 현대차의 이름으로 고급차를 출시한 셈입니다. 당시 혹자는 '티코'를 만들던 대우국민차가 갑자기 고급차 '아카디아'를 내놓은 것과 비슷하다는 말도 나왔죠. 그래도 현대차가 자신감이 있었던 이유는 '워너비' 폭스바겐의 행보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페이톤은 북미에서 크게 실패했고, 폭스바겐의 전략을 따랐던 에쿠스 역시 현지에서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브랜드 전략의 고민은 다시 시작됐습니다. 차량명이 아니라 통일된 고급차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특히 한 등급 아래인 제네시스가 에쿠스보다 호평을 받은 것은 제네시스를 브랜드로 낙점하게되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하지 않았다면, 또 현대차가 폭스바겐 대신 당초 계획대로 일본 토요타와 혼다의 전략을 추구했다면, 고급차 브랜드는 좀 더 일찌감치 론칭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독일 고급차를 겨냥해 개발한 제네시스는 후륜구동 플랙시블 플랫폼을 바탕으로 등장했습니다. 차 길이와 보디 타입에 따라 다양한 모델을 개발할 수 있는 플랫폼이지요. 대형 세단부터 중형 세단, 심지어 상시사륜구동 시스템인 H-TRAC을 바탕으로 SUV까지 영토를 확장할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사진은 2세대 제네시스. (사진제공=현대자동차)

지난 4일 현대차는 고급차 브랜드를 '제네시스'로 일원화하고 이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제네시스는 2020년까지 대형 세단과 SUV 등 6개 차종을 출시할 계획입니다.

우선 다음 달 대형 세단인 '제네시스 G90(국내명 EQ900)'를 선보입니다. 이 차량은 신형 에쿠스로 개발되었던 차량입니다. 또 현재의 제네시스 모델은 내년쯤 '제네시스 G80'으로 이름을 바꿔답니다. 여기에 현대차는 제네시스만 전담하는 연구개발 및 디자인 센터를 신설하고, 루크 동커볼케 전 벤틀리 수석 디자이너를 야심차게 영입하는 등, 상당한 힘을 실었습니다.

한 가지 예상을 해볼까요? 현대차가 이제 서브 브랜드 전략을 확정한 만큼,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처럼 수출 시장을 위한 중저가 브랜드를 멀지 않은 시점에 내놓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현대차는 제네시스 브랜드 론칭과 함께 연말 데뷔를 앞둔 3세대 에쿠스(코드네임 HI) 실루엣을 공개했습니다. 이제 에쿠스라는 이름 대신 제네시스 EQ900으로 불리게 됩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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