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대한민국] 사회적 갈등 초래한 ‘미투 판결’

입력 2018-10-04 18:45수정 2018-10-05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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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태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부회장

▲박기태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부회장
8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한 달쯤 후 김문환 전 주에티오피아 대사가 성폭력범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는 사건도 있었다.

두 사건은 자신의 위력을 사용해 부하 여직원을 추행, 간음했다는 데 공통점이 있으나 법원의 판단은 서로 달랐다. 물론 두 사건은 앞으로 항소심과 상고심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위력에 의한 간음 등 사건들과 관련한 논란에 ‘피해자다움’이라는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피해자다움은 정조 관념에 기초한 것으로서 위력에 의한 간음 등 성폭력 범죄의 성립을 인정하기 위한 결정적이거나 필수적인 요건이라 할 수 없다. 성폭력 범죄의 보호법익은 온전한 인격과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는 점에서, 피해자의 동의가 있었는가에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형사소송의 경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말이 있다. 유죄 인정은 단지 사회적 비난 대상이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법관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함을 확신하게 하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성폭력 행위로 기소된 피고인이 형사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고 해서 그 범행을 하지 않았다거나 도덕적으로 옳다고 확인받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범죄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 전 지사 사건의 1심 법원은 성폭력 행위에 대한 종전의 처벌 규정이 사회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고 체계적인 정비가 지체되고 있다는 사정 등으로 ‘행위’와 ‘책임’ 사이에 불합리한 괴리가 발생한다는 비판을 지적하고 있다.

올바른 지적이다. 위력에 의한 간음죄는 성폭력 당시의 제반 상황에 비춰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제압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러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는 법익이 침해되는 결과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다.

형사법상 규정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자의 법적 책임은 죄형법정주의 원칙 등에 따라 엄격히 인정돼야 하는 만큼 사회적·도덕적인 비난과 법원의 판단이 다를 수 있다.

이와 별개로 가해자의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구나 헌법과 법률에 따른 기본적 인권과 적법 절차 등을 누릴 권리가 있다. 형사피고인도 마찬가지이다. 헌법 제27조 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성폭력 사건에서도 간과해서 안 되는 점이 바로 무죄 추정의 원칙이다. 물론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도덕적으로도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돼 조사받는 순간, 사실 여부도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퍼져 이른바 ‘여론 재판’에 의한 사회적 인격 살인과 같은 인권침해 문제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를 통해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법조계에는 최근 일부 변호사가 증가하는 성폭력 사건 유치를 위해 무분별한 문구의 광고를 함으로써 2차 피해를 유발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어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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