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공정거래-Law] 들러리 업체를 세워도 '입찰 담합'일까요

입력 2018-04-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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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바른 공정거래팀 전승재(35·변호사시험 3회) 변호사(바른 제공)

A사는 기존 제품을 대체하는 차세대 제품(killer-app)을 발명해 상용화에 성공했습니다. 차세대 제품의 제조사로는 A사가 국내에서 유일했습니다.

차세대 제품의 수요처는 공공기관이었습니다. A사는 수요기관을 설득해 기존 제품을 차세대 제품으로 교체하는 사업을 성사시켰습니다. 기관은 차세대 제품의 도입비용 대비 성능을 평가해 적정한 구매가격을 결정하고 예산까지 수립했습니다.

그런데 수요기관은 수의계약을 체결해주기가 부담스럽다며 입찰공고를 냈습니다. 입찰규격에 맞는 차세대 제품의 제조사는 A사밖에 없으니, 애초에 입찰이 성립할 수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현행 제도로는 입찰에 참여한 사업자가 하나일 경우 유찰로 처리한 후 입찰을 재공고하며, 이때도 다른 사업자가 참가하지 않아야 비로소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무상 재입찰 절차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기다리는 동안 해가 바뀌어 예산이 이월되기라도 하면 당해 사업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유찰을 방지하기 위해 입찰에서 들러리를 세워도 공정거래법 위반이 성립할까요?

이 문제에 대해 대법원은 "위법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입찰담합에 관한 공정거래법 제19조 제1항 제8호는 입찰 자체의 경쟁뿐 아니라 입찰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경쟁도 함께 보호하려는 데 그 취지가 있다”는 것이 대법원이 제시한 이유입니다.

사실 입찰에 들어올 수 있는 사업자가 하나뿐인 경우에는 들러리를 세우더라도 수요기관의 실질적 손해는 없습니다. 가격은 수요기관이 제품을 도입하기로 의사결정 하는 시점에서 정해집니다. 계약 절차를 애초에 수의계약으로 하거나 입찰에 해당 사업자 혼자 들어가서 유찰 후 재입찰 절차를 기다려 수의계약을 체결하든, 첫 입찰에서 들러리를 세우든, 계약 가격은 모두 똑같습니다. 즉, 단독응찰 상황에서는 "입찰 자체의 경쟁"은 일어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입찰에 이르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입찰담합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입찰에 관해서는 절차적인 편법조차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기업으로서는 대법원이 견해를 바꾸지 않는 이상 단독응찰이 명백한 상황에서도 들러리를 세워서는 안 됩니다. 단독응찰이 예상될 경우, 유찰 및 재입찰 절차에 소요될 기간을 고려해 절차를 일찍 진행해달라고 수요기관의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물론 애초에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법률상 자격(예: 중소기업 성능인증서)을 취득해 두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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