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189. 도화녀(桃花女)

입력 2017-09-0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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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진지왕 동침, 비형을 낳은 신라 미녀

도화녀(桃花女)는 신라 제25대 진지왕(재위 576∼579)과 제26대 진평왕(재위 579∼632) 대의 여성이다. 사량부(沙梁部)에 살던 서민의 딸로, 혼인하여 남편이 있었다. 매우 아름다워 당시 사람들이 도화랑(桃花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진지왕은 575년에 즉위한 지 4년 만에 정치가 문란해졌고, 음란함에 빠져 폐위된 왕이다. 도화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욕심을 내었는데, 이때가 진지왕 4년의 일이었다. 진지왕은 도화녀를 궁으로 불러들여 관계를 맺고자 하였다. 이에 도화녀가 단호히 거절하기를, “여자가 지킬 일은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미 남편이 있는데, 어찌 남에게 가겠습니까? 왕의 위엄으로도 끝내 정조를 빼앗지는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너를 죽인다면 어찌하겠느냐?”라고 하니, 도화녀는 “차라리 저자거리에서 목을 베일지언정 다른 마음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왕이 희롱하길 “남편이 없으면 되겠느냐?”라고 하자, 도화녀가 “됩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도화녀를 돌려보내 주었다. 그리고는 그해에 진지왕은 폐위되었고, 죽었다. 도화녀의 남편 역시 3년 후에 죽었는데, 남편이 죽은 지 열흘 후 밤에 왕이 도화녀를 찾아왔다.

진지왕이 “네가 예전에 말했듯이 지금은 남편이 없으니 괜찮으냐?”라고 하였다. 이에 도화녀는 부모와 상의한 끝에 결국 방에 들어갔다. 왕은 7일을 머무르다가 사라졌다. 도화녀는 임신을 하였고, 남자아이를 낳았다. 그가 비형(鼻荊)이다.

진평왕이 비형의 출생 사실을 알고, 궁 안으로 데려와서 길렀다. 비형이 15세가 되자 집사(執事)로 임명하였다. 그런데 비형은 밤마다 궁 밖으로 나가 귀신을 데리고 놀다가 절의 새벽 종소리에 귀신이 흩어지면 그제야 돌아왔다. 비형은 귀신을 시켜 하룻밤 사이에 귀교(鬼橋)를 놓기도 하였다. 또한 귀신들 중 하나인 길달(吉達)을 추천하여 조정의 일을 돕게 하다가 그가 도망가자 귀신을 시켜 잡아 죽이기도 하였다. 이후 귀신들이 비형의 이름을 들으면 두려워 달아났다고 한다.

도화녀는 죽은 진지왕과의 교합을 통해 비형을 낳았다. 비형은 서민의 신분이지만 궁중에서 길러져 집사가 되었고, 살아 있는 사람이지만 귀신에게 공포의 대상이며 그들을 부리는 자였다. 도화녀는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죽은 자와도 교통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도화녀의 능력은 비형에게 대물림되었다.

도화녀와 진지왕의 만남이 매우 특이하다. 남녀의 만남을 넘어 서민과 왕의 만남이고, 산 자와 죽은 자의 만남이다. 더욱이 이 만남의 최종 결정은 도화녀에 달려 있었다. 도화녀는 서민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지왕의 구애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도화녀의 아름다움은 외모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의연할 수 있었던 내면이 반영된 것이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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