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188. 연제부인(延帝夫人)

입력 2017-09-01 12:01수정 2017-09-0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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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 박씨 왕비시대 연 지증왕 천생배필

연제부인(延帝夫人)은 신라 제22대 지증왕(智證王·재위 500∼514)의 왕비이고, 제23대 법흥왕(法興王·재위 514∼540)의 어머니이다. 연제부인의 성은 박씨(朴氏), 아버지는 이찬(伊飡) 등흔(登欣) 혹은 검람대한한지등허(儉攬代漢漢只等許) 각간(角干)이다.

지증왕은 전대의 왕인 제21대 소지왕(炤知王·재위 479∼500)의 재종(再從) 동생이다. 지증왕의 즉위조에 따르면, 소지왕이 아들이 없이 죽었기 때문에 지증왕이 64세의 나이로 즉위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소지왕은 벽화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하나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증왕이 즉위하였다는 것은 여러 정황에도 불구하고 그가 왕위를 계승할 만한 적격자로서 인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국유사’ 기이(紀異)편에는 지증왕과 연제부인의 혼인과 관련한 일화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지증왕은 김씨로, 이름은 지대로(智大路) 또는 지도로(智度路)이다. 그런데 지증왕이 배필을 구할 때에 어려움이 있었다. 음경의 길이가 1자 5치나 돼 그에 마땅한 배필을 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에 사자(使者)를 3도에 보내 구하기에 이르렀다.

사자가 모량부(牟梁部) 동로수(冬老樹)에 이르렀을 때, 개 두 마리가 북만큼 큰 똥 덩어리의 양쪽 끝을 물고 다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어마어마한 배설물의 주인이 누구인지 마을사람들에게 수소문한 끝에 모량부 상공의 딸이 그인 것을 알았다. 사자가 그 집에 가서 보니 과연 여자의 키가 7자 5치나 되었던 것이다. 사자는 그 즉시 지증왕에게 보고를 아뢰었고, 왕이 수레를 보내 모량부 상공의 딸을 궁으로 맞아들여 황후로 삼았다고 한다.

지증왕과 연제부인은 각기 남다른 인물이었다. 이들의 남다름은 크기로 비견되어 있다. 지증왕의 음경과 연제부인의 배설물과 키의 크기는 이들의 만남이 필연이었음을 알려준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배필을 찾던 지증왕이 찾은 것은 모량부 상공의 딸이었다. 김씨와 박씨의 정치세력 간의 결합이었던 것이다. 지증왕은 그의 배포에 걸맞은 배필과 그의 정치적 야망을 이루어줄 정치세력을 찾고 있었다. 연제부인은 그에 적합한 인물이었고, 그가 속한 모량부 박씨 집단은 그에 부합하는 정치세력이었다.

지증왕 대부터 시호가 시작되었고, 왕호를 마립간(麻立干)으로 칭하기 시작하였다. 신라의 마립간기는 왕권이 크게 강화된 시기이다. 그리고 마립간기에는 일련의 박씨 왕비가 등장하는데, 이를 박씨 왕비족이라 칭하기도 한다. 연제부인과 그가 속한 박씨세력이 마립간기의 왕권 강화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제부인은 ‘삼국유사’에 영제부인(迎帝夫人)이라고 하였다. ‘제왕을 맞아들인 부인’이라는 의미의 이 칭호는 남편인 지증왕을 왕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연제부인의 배포와 능력을 의미한 칭호였을 것이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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