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지방이전 공공기관의 씁쓸한 자화상

입력 2019-10-07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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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곤 정치경제부 기자

▲서병곤 정치경제부 기자
정부 산하 공공기관 직원들은 정부부처 출입 기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종종 세종 근처에서 오찬 또는 만찬을 한다.

기자들을 만나는 직원 대부분은 수도권에 있다가 지방으로 본사를 이전한 공공기관 소속 직원들이다. 그러다 보니 식사 자리에선 지방 생활의 애환이 항상 밥상의 화제가 된다. 주로 주중에는 기러기 생활을 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대구로 이전한 A공공기관 직원은 “서울에서 오랜 기간 거주해온 아내와 자녀들이 지방으로 같이 내려오는 것을 꺼려해 홀로 내려와 자취생활을 하고 있다”면서 “금요일에는 서울로 올라가 주말에는 가족들과 생활하지만 일요일 저녁에는 다시 대구로 내려간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육체적·정신적으로 피로감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지방 이전으로 인력 이탈이 발생하고 있다. 올해 2월 울산으로 이전한 B공공기관 직원은 “지방 이전 준비 과정에서 여성 직원 상당수가 육아, 자녀교육, 결혼 문제 등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들의 퇴사는 회사 입장에서는 손실이다”고 말했다. 또한 예전에는 채용 공고를 내면 수도권 거주 취업준비생들의 지원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손가락을 꼽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변에 교통시설, 편의시설 등 인프라 부족으로 외딴섬에 갇힌 것과 같다는 푸념도 적지 않다.

경주로 본사를 이전한 원전 공기업인 H사는 지역 남성 주민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소문까지 들린다. 높은 연봉과 정년보장 등 근무여건이 좋은 H사 미혼 남직원들이 결혼 상대자로 지역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얻다보니 지역 미혼 남성들의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의 숨겨진 애환이다. 1차 공공기관(153개사) 이전을 완료한 정부는 조만간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한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지역발전을 위해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다. 다만 지방 이전 당사자인 공공기관 직원들의 고충을 해소할 수 있는 대책도 함께 마련해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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