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진의 만년필 이야기] 40. 손님은 왕이라지만

입력 2019-06-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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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연구소장

만년필이 다른 필기구보다 매력적인 것은 펜촉이 있기 때문이다. 홀쭉하고 뾰족하게 쭉 뻗은 모양의 손톱만 한 단도 같은데, 그 끝에서 잉크가 졸졸 나오니 암만 봐도 신기하다. 또 고급품이라면 14K 또는 18K 황금(黃金)으로 만들어지고, 확대경으로 보면 하얗게 보이는 펜 끝(Pen point)은 황금보다 더 귀하다는 여러 백금(白金)이 모인 합금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주선이 오가는 첨단의 시대에도 그 펜 끝은 숙련된 장인(匠人)이 하나하나 깎고 다듬어 마무리한다는 점이다. 이 작업이 얼마나 섬세하고 까다로운 것이냐 하면, 1960년대 셰퍼의 최고 장인(ace nib grinder)은 27년 동안 50만 개의 펜촉을 깎았는데, 이것이 많아 보여도 계산하면 하루에 60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에이스가 이 정도였으니 보통 수준의 경우 30개, 신참이라면 10개 남짓 완성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에이스와 신참 간에 실력 차이가 분명 있다는 점이다. 잘 깎인 펜촉은 매끄럽고 부드럽게 써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얼핏 펜 끝은 하나의 구(球)로 보이지만 사실상 두 개의 반구(半球)가 붙은 것으로 그 반구의 크기는 양쪽이 똑같아야 명품(名品)이다. 반대로 마무리가 서툰 것은 쓸 때마다 종이를 벅벅 긁고 획(劃) 또한 건너뛰는 등 제대로 써지지 않는다. 때문에 만년필을 제법 수집하는 사람들은 보석 세공사가 가지고 다닐 법한 열 배(10X)의 확대경을 늘 갖고 다니며 펜촉을 확인한다.

펜촉 이야기가 나온 마당에 사람들 모두가 명품으로 생각하는 몽블랑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보자. 몽블랑 대표 모델인 ‘마이스터스튁 149’는 1952년부터 지금까지 생산되고 있는데, 1950년대 펜촉을 최고로 하고 그다음이 60년대, 70년대, 80년대 등 오래된 것일수록 좋게 친다. 실제로 확대경으로 봐도 오래된 것일수록 이것이 사람의 솜씨인가 싶게 5대 5로 명확하게 갈라져 있고, 써보면 적당한 탄력으로 마냥 매끄러운 것을 넘어 나긋나긋 부드럽게 써진다. 이는 몽블랑뿐만 아니라 모든 만년필 회사에 해당되는데, 지금 펜촉을 깎는 사람들에게 서운하게 들릴지 몰라도 예전 장인들 솜씨가 더 좋았다는 것이다.

▲1970년대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49
그럼 이 좋은 펜촉을 어떻게 알아볼까. 간단하다. 전문가용 열 배의 확대경도 필요 없다. 선물로 받았든 또는 물려받았든 간에 149를 가지고 있다면 일반 돋보기라도 구해 펜촉을 보라. 금 함량 표시인 14, 18캐럿의 표시가 14C, 18C인지 확인하면 된다. 왜나하면 149는 1985년부터 금 함량 표시를 C에서 K로 바꿔, C로 표시된 1985년 이전이면 좋은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집의 길이 어려운 것이 이런 149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1985년이라도 약 35년 전이라 남아 있는 것이 적고 그나마 있는 것들도 선배 수집가들의 손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전의 신품(新品) 149를 구합니다.”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면 구해질까? 중국고사에 아주 적절한 답이 있다.

전국시대 연(燕)나라 소왕(昭王)이 인재를 구하려 애썼는데 충신 곽외가 하루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옛날 어느 임금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후한 값을 주고 죽은 명마를 샀더니 얼마 되지 않아 산 천리마 몇 마리를 얻게 되었답니다.” 소왕은 이 이야기를 듣고 돈은 물론 몸까지 낮추어 인재를 얻었다는 것. ‘천금시골(千金市骨)’의 고사이다. 상태가 좀 떨어져도 깎지 않고 사고 일단 샀으면 가타부타 말이 없어야 한다. 천리마도 나오는 마당에 1970, 80년대 149보다 더한 것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아무리 손님은 왕이라지만… 왕도 매너가 있어야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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