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호의 고미술을 찾아서] 민예(民藝), 무심(無心)과 평심(平心)의 아름다움

입력 2019-06-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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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평론가, 전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내가 고미술에 입문한 지 30여 년. 강산이 세 번은 바뀌었을 그 동안 나는 시간을 잊은 듯 우리 고미술에 담긴 한국미의 원형과 특질을 찾아 방황했고 그러면서도 끝내 놓지 않았던 화두는 ‘민예(民藝)의 아름다움’이었다.

‘민예’는 친근함이 느껴지는 말이다. 관(官)이 아닌 민(民)이어서 그럴까? 민화, 민속 등과도 상통하는 느낌이 있다. 당연히 우리가 만들어 써왔던 말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말은 일본의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특권 소수가 감상을 목적으로 하는 ‘귀족적 공예’의 대척적 의미로 다수의 백성이 사용을 목적으로 하는 공예를 ‘민중적 공예’, 또는 줄여서 ‘민예’로 부른 데서 비롯했다. 일제강점기에 새로운 근현대 문물이 일본에서 들어올 때 그 용어도 저들 것을 받아 쓴 사례라 하겠다.

‘민예’라는 말의 유래에서 짐작되듯 우리 민예에 관한 미학적 논의는 일본인들의 손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우리 손으로 써진 변변한 연구논문 한 편 없었던 1920년대, 야나기와 그의 동료들이 윌리엄 모리스(W. Morris, 1834∼1896) 등이 주창한 유럽의 미술공예운동을 본받아 민예운동을 전개하고 더불어 우리 민예의 아름다움에 깊이 공감하면서부터다. 그들은 식민지 조선의 ‘일상 잡기’의 아름다움에 주목했고, 한국미술에 구현되어 있는 민예적 조형성을 높이 평가했다. 불모지였던 우리 민예미학의 주추를 놓는 데 기여했고 조선 민예품의 보존과 전시에도 앞장섰다. 그 점에서 우리는 그들에게 일정한 빚을 지고 있다.

민예는 민간의 삶 속에서, 삶과 더불어 생장한다. 특권 상류층이 아닌 일반 백성들의 삶과 심성을 닮아 평범하고 소박하다. 과도한 장식이 없고 고도의 기술이나 기교 또한 발휘되지 않는다. 그러한 미학적 속성은 고유섭(1905∼1944)의 지적처럼 “생활 자체의 미술적 양식화”를 통해 형성된다. 그래서 민예에는 시공을 초월하여 그들의 생사관과 미의식이 풍부하게 담기기 마련이고, 그러한 내용과 표현은 전통이 되고 양식으로 굳어져 강한 생명력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민예에는 그러한 보편적 속성을 초월하는 그 무엇이 있다. 자유로우면서 격(格)이 있고 검박하면서 간결하다. 중국이나 일본 공예에서 보이는 숨 막히는 기교나 작위적인 꾸밈이 없다. 완벽한 기술주의가 구사되지 않아 개별적 디테일에서는 어색하고 부족한 듯하나 전체적으로는 조화와 통일을 추구했다. ‘손 가는 대로’의 조형이라 해도 될까? 그럼에도 강한 흡인력이 느껴진다. 나는 그 무엇을 무심(無心)의 아름다움, 평심(平心)의 아름다움으로 부르고 싶다. 무심과 평심은 자연과 함께 상생하는 삶에서 생겨나는 것이고 그 심성으로 삶의 고단함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것이 바로 우리 민예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대공예나 미술에서 강조되는 과장, 난해함, 강열함, 인위적 조작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그 속에는 선인들의 꿈이 담겨 있고 삶에 대한 긍정이 녹아 있다. 토기의 원시적 건강함이 그렇고 목가구의 뛰어난 비례감이 그렇다. 민요(民窯) 도자기의 넉넉함, 조각보의 색면 구성 또한 그러하니 이는 지난 수천년 동안 한민족이 생육해온 아름다움의 나무가 살아 숨 쉬는 숲과 같은 것이다.

그 아름다움은 어떤 현대적 조형 논리로 설명될 수 없고 창작될 수 없다. 오직 자연의 질서와 삶의 지혜가 녹아들어 만들어질 뿐이다. 삶과 미술, 신앙이 하나였던 옛사람들이 일념으로 응축한 미감을 어찌 현대인들의 온갖 잡념이 들어간 부박(浮薄)한 미감에 견줄 것인가.

그런 의미 때문일까. 나는 그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나의 여정이 끝날까 봐 두려웠고 두려워서 집착했다. 쉬운 듯 어렵고, 평범한 듯 비범한 아름다움! 내 가슴에 우리 민예의 아름다움은 늘 그렇게 존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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