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기자가 만났다] 위정현 게임학회장 "게임중독 질병 지정…의료계 정치집단화에 당했다"

입력 2019-05-28 11:05수정 2019-05-2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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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겸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게임 중독 질병 등록 사태를 '의사들의 정치집단화'라는 키워드로 설명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의사들은 정치 집단화로 힘을 행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당할 줄 몰랐고, 그만큼 게임계는 안일했습니다.”

게임 중독 질병코드 등록 반대의 최선두에 나선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겸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27일 이투데이가 만난 위 학회장은 이번 사태를 ‘의사들의 정치 집단화’라는 키워드로 설명했다.

같은 날 WHO는 제네바에서 열린 72차 총회에서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코드 ‘6C51’로 등재, 정신·행동·신경발달 장애 영역의 하위 항목으로 분류했다. WHO의 질병 규정은 각 국가에 권고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WHO 회원국인 한국은 아주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WHO의 권고를 수용해 왔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게임 중독은 질병으로 등재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는 이번 사태로 국내 게임산업이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중소기업은 지금도 자고 일어나면 부도가 난다고 할 만큼 심각하고 우울한 상황입니다. 여기서 더욱 급격히 무너질 가능성이 있죠. 세계 원톱이었던 PC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한국은 이제 선두그룹 정도로 내려왔습니다.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는 미국, 중국, 북유럽 등에 밀려 후발그룹 정도라고 봐야 하고요. 한국만 질병 등록을 선제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아마 지금보다 훨씬 뒤처진 그룹에 속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위 학회장은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의료계가 너무 조급하게 질병 등재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원인은 역시 이권에 대한 다툼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의료계에서도 현재 시점에서 무엇을 게임 중독으로 분류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부족하다고 인정하는 게 현실입니다. 기존 중독 관련 센터 운영의 활성화를 통해 게임 과몰입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데이터 축적을 실시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작업이 이뤄지기 전에 한국이 특별히 선제적으로 질병 등록에 나설 이유가 없지 않겠어요?”

▲위 학회장은 한국 의료계가 게임 중독 질병 등록에 지나치게 성급한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미국의 심리학자 크리스토퍼 퍼거슨 교수가 WHO 고위 관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압박을 받았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는 게 보도된 바 있지 않습니까. 근데 실제로 WHO의 이번 결정에 큰 관심을 보이는 나라는 아시아에서도 한국 뿐이에요. 2012년에 중독정신의학회가 ‘재정 확충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발표한 이후, 지속적으로 의사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낸 결과가 이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임 중독이 질병이 되고 나면 보건복지부가 이를 기반으로 예산을 요구할 것이 분명합니다.”

위 학회장은 게임 중독 질병 등록 사태 이후 의료계가 예산 확충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적극적인 이익 창출 기반으로 활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게임 중독이 질병이 되면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가 논의될 겁니다. 상담을 실시할 것이고 약을 판매하겠죠. 현재 진단과 분류도 대단히 모호한 상태인데 말이죠. 전국 모든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 진단을 의무화하자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 진단료가 1인당 1만 원씩이라고만 해도 얼마만큼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지는 매우 뚜렷하게 보입니다. 정치 세력화하며 '재정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는 이유로 게임을 위험한 중독 인자로 몰고 갔던 의료계입니다. 이걸 게임계가 어떻게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의사들과 보건복지부와의 파워게임에서 게임업계가 속수무책으로 백기를 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지리멸렬’과 ‘무관심’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한국의 게임 산업 20년 역사는 ‘패배의 역사’입니다. 때리면 두들겨 맞기 바쁜 산업이에요. 직접적으로 이익이 안 된다거나 부담스럽다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의사 표현을 피해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1세대 창업자들이 나오고 모여서 다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자유롭게 의사 표현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걸 왜 우리는 못 합니까.”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한 위 학회장은 '공대위'의 출범에 기대를 걸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런 이유에서 위 학회장이 위원장을 맡는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의 출범에 기대하는 바가 많다고도 했다. “공대위는 게임계가 제 목소리를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조직입니다. 지금까지 기껏해야 모여서 성명서 발표하는 정도가 끝이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집단행동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그간 자성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던 게임업계에도 반성이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게임회사들도 게임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막기 위해 이런저런 기여를 해왔겠지만, 그게 국민이 알아줄 만큼의 노력은 아니었던 게 사실입니다. 의료계가 착실한 연구와 정치세력화를 이루는 동안 게임업계와 게임학계에서도 지속적인 반박 연구와 데이터 축적을 해왔어야 했는데, 이 역시 제때 해내지 못 했고요. 참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게임이 원인으로 지목된 많은 사건의 경우, 게임을 넘어선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음에도 사회가 게임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빈번했던 것도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어떤 흉악 사건이 벌어지면 그 사람이 게임을 많이 해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아니면 그의 환경적 영향이 그가 ‘게임도’ 많이 하게 만들었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게임이 없다고 살인이 없어지고 흉악범죄가 사라지겠습니까? 게임이 강력범죄의 원인이 아니라 또 하나의 결과일 뿐이었다면, 과몰입을 유발시키는 게임이 이같은 흉악 범죄자를 계도할 책임이 있다고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위 학회장은 게임을 악한 것으로 보는 사회 풍조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야 한다고 봤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위 학회장은 학부모들이 게임에 대한 적개심을 줄여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게임 과몰입이 일어나는 아동의 경우 사회적 소외계층과 취약계층인 경우가 많습니다. 옛날 게임이 없던 시절 본드 흡입 등을 하던 그 계층 아동의 취미생활이 게임으로 바뀐 것입니다. 부모님이 맞벌이하는 동안 같이 이야기를 나눠줄 언니, 오빠가 있으면 좋겠지만, 축구나 야구 같은 값비싼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어려운 가정도 많습니다. 가장 값싸게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수단의 하나가 게임입니다. 게임은 절대 학부모와 학생들의 적이 아니라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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