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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아이리버"~ 우리가 사랑했던 MP3P 브랜드
입력 2019-03-28 18:04   수정 2019-03-29 11:01

▲아이리버의 2005년경 광고. 모델이 애플을 상징하는 '사과'를 씹어먹고 있다. (사진제공=아이리버)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가 있기 전. 이 땅에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전자기기 업체 애플의 라이벌 회사가 있었다. MP3플레이어(MP3P) 시장에서 애플 ‘아이팟’과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였던 국내 벤처의 입지전적 신화 ‘아이리버’. 그 이름이 오늘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졌다.

28일 아이리버는 정기 주주총회 결과에 따라 상호를 ‘주식회사 아이리버’에서 ‘주식회사 드림어스컴퍼니’로 변경한다고 공시했다. 아이리버는 2012년부터 ‘아스텔 앤 컨(Astell & Kern)’이라는 이름의 고급형 MP3P 브랜드를 출시하며 ‘아이리버’라는 이름의 제품은 일부 ODM(제조자설계생산) 외에는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사명으로 남아있던 ‘아이리버’마저 변경됨에 따라, 이제 ‘아이리버’라는 브랜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벤처신화 ‘아이리버’의 부흥

아이리버는 1999년 삼성전자를 퇴사한 양덕준 대표가 설립한 ‘레인콤’이 시초다. 직원 7명에 자본금 3억 원으로 세워진 이 회사는 세계 최초의 멀티코덱 CD플레이어(CDP), 플래시메모리 MP3P 등으로 북미와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기록적인 성장을 보였다.

아이리버의 전신인 레인콤은 MP3P업체가 아니라 CD 서보트래킹 부품업체였다. 당시 MP3를 재생할 수 있는 CDP가 시장에 출시되자 레인콤은 미국의 소닉블루에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MP3 CDP를 공급했다. 이후 소닉블루와 결별하면서 아이리버라는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시장에 승부했고 MP3 CDP인 'iMP-100'과 MP3P인 'iFP-100'은 예상 외의 성공을 거뒀다.

아이리버는 2000년경 국내 시장 60%, 세계 시장 20%라는 MP3P 점유율을 확보했다. 2003년엔 코스닥시장에 상장했으며, 상장 첫날 액면가(500원)의 210배인 10만5200원이라는 당시로선 상당히 높은 주가로 주식 시장과 IT업계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아이리버가 전성기를 구가한 2004년엔 창립 5년 만에 매출 4540억 원, MP3P 시장 국내 점유율 79%, 세계 시장 점유율 25%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한다. 2005년, 애플을 따라잡기 위해 내놓은 야심작, ‘아이리버 H10’. 이를 출시하며 내보낸 ‘그 광고’아직까지 전설적으로 회자되고 있는 작품이다.

▲전설의 '사과 씹어먹기' 광고. 이 도발이 무리수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사진제공=아이리버)

사과를 깨무는 광고 속 모델의 모습에서, 스스로를 세계 최강 IT기업 애플의 맞수로 여기는 아이리버의 자신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 광고가 매거진과 옥외 광고판을 장식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안타깝게도 이 시점이 아이리버의 마지막 불꽃이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등장…시대의 조류 속에서

사과 광고로 유명해진 아이리버 H10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H10은 대단한 참패를 기록했다. 치명적인 결함 발생으로 대규모 리콜사태를 맞았고 500억 원의 규모의 재고를 떠안게 됐다.

아이리버는 MP3P에서 품목 다양화로 활로를 모색했다. 2005년 출시한 전자사전 딕플은 김태희가 출연한 광고로 큰 반향을 얻었다. MP3 재생, 동영상 재생, DMB, 라디오 기능 등이 전자사전에 추가되기도 했고, 이들 기능을 망라한 PMP라는 제품군으로 이어져 인기를 끌었다.

많은 하드웨어 업체들이 이같은 종합 미디어 기기 상품을 내놓았고, 이때의 아이리버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 이 바닥에 다가올 대격변을 아직 예감하지 못했던 것일까?

▲스티브 잡스가 시연하던 첫 번째 아이폰. 이날 이후 IT 업계는 돌이킬 수 없는 격변을 맞게 된다.(AP/뉴시스)

2007년 1월 9일. 애플은 아이팟을 기반으로 휴대전화를 결합한 스마트폰을 출시한다. 그 유명한 아이폰의 첫 모델, ‘아이폰 디 오리지널’. 이날 이후 카메라, PMP, MP3P, TV, 게임기, 스피커, 내비게이션, PDA, 계산기에 심지어 랩톱의 기능마저도 이 200g이 채 되지 않는 작은 기계 속으로 하나둘씩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기술 발전이 만들어 낸 막을 수 없는 시대의 조류였다.

애플은 소프트웨어와 인프라까지 확보할 수 있는 거대기업이었다. 자체적으로 음원 공급처 ‘아이튠즈’를 확보한 애플과 재생 하드웨어만 만들었던 아이리버는 이미 아이팟과 대결을 하던 MP3P 시장 때부터 애플 쪽이 우세한 상황이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스마트폰에 MP3P 기능이 탑재되면서부터는 완전히 일방적인 애플 구도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시련의 전조는 2005년 애플이 내놓은 초저가 MP3P인 '아이팟나노'에서 시작됐다. MP3 파일을 저장할 수 있는 메모리 용량이 가장 중요했던 시기에 애플은 막강한 메모리 구매력으로 경쟁사 가격의 절반에 불과한 MP3P를 내놓은 것.

MP3P 원가 구조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대량으로 메모리를 구입할 수 있던 애플은 메모리 가격을 최대한 낮춰 구매해 이윤을 확보했지만, 아이리버는 그렇지 못했다. '얼마나 값싸게 메모리를 구입할 수 있느냐'는 수익과 직결됐다. 이 같은 구조는 메모리를 직접 생산하는 삼성전자에게도 밀리게는 단초가 됐다.

결국 2007년 국내 사모펀드 기업인 보고리오투자목적주식회사가 아이리버의 경영권을 인수했고, 창업자인 양덕준 사장은 떠나게 된다.

2008년경 아이리버는 국내 점유율마저 삼성의 MP3P인 ‘옙(Yepp)’에게 밀려나게 된다. 옙의 점유율은 40%, 아이리버는 15~20%에 머물고 만다. 2009년에 ‘아이리버’ 제조사인 레인콤은 브랜드 ‘아이리버’를 아예 상호명으로 변경한다. 마쓰시타 전기산업이 자사의 가장 유명한 브랜드 ‘파나소닉’으로 사명을 바꾼 것처럼 대외적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를 이용해 회사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이미 이런 정도의 시도로 사운을 되돌리긴 어려운 상황에까지 오고 말았다.

◇재기를 꿈꿨지만…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었다

2010년엔 아이튠즈를 타산지석 삼아 음악 다운로드 스토어인 ‘아이리버 뮤직’을 론칭했다. 하지만 이 해 아이리버는 200억 원의 적자를 내고 만다. 전자책 사업, PC와 모니터 사업도 진출해봤지만 역시 신통치 않았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든가. 마침내 본업인 MP3P에서 재기의 활로를 모색한다. MQS(마스터 퀄리티 음원ㆍCD의 6.5배 많은 정보량을 담은 음원) MP3P인 ‘아스텔 앤 컨(Astell & Kernㆍ약칭 AK)’ 브랜드를 론칭한 것이다.

▲고성능 MP3플레이어인 '아스텔 앤 컨 AK100'. (출처=아이리버 홈페이지 캡처)

이 제품은 CDP의 음질인 44kHz, 16bit를 넘어 192kHz, 24bit의 고해상도 음원 재생을 지원하는 고급 음원 재생기기였다. 가격도 초기모델인 'AK100'이 70만 원대, 후속작 'AK120'은 무려 150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이었다. 이후에는 400만 원대 제품까지 출시했다. 이후 사업성이 나쁜 기존의 ‘아이리버’ 모델은 하나 둘씩 단종되며 사라져갔다.

그러나 결국 2014년 아이리버는 다시 SK그룹에게 인수된다. 이런저런 다사다난한 일들 속에서 2018년엔 SM, JYP,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음원과 음반을 유통하는 역할도 맡게 됐다. 이것은 다가올 업종 전환을 암시하는 행보였다.

◇안녕, 아이리버

상술한 바와 같이 ‘아이리버’라는 이름은 전자기기의 브랜드로도, 회사명으로도 더 이상 전면에 남아있지 않게 됐다.

아이리버에서 사명을 변경한 ‘드림어스컴퍼니’는 ‘콘텐츠 플랫폼 기업’을 사업의 주목적으로 할 방침이다. 신임 이기영 드림어스컴퍼니 대표는 직전까지 SK텔레콤 뮤직사업TF장을 역임한 인물로, 신규 음악플랫폼 ‘플로’를 론칭해 음악 사업을 이끈 경험이 있다.

이제 아이리버, 아니 드림어스컴퍼니는 ‘멜론’, ‘지니’와 같은 음원 스트리밍이나 음반 유통 등을 전담하는 콘텐츠 플랫폼 회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휴대용 음원재생기기 업체 아이리버의 정체성마저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드림어스 측은 사업의 무게 중심이 음악 플랫폼으로 상당부분 이동하겠지만, 아이리버 브랜드를 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일부 MP3P와 가정용 오디오, 보이스리코더 등에 아이리버 브랜드를 붙여 계속 판매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쇄신에 쇄신을 더욱 거듭했다면 ‘아이리버’가 지금의 애플, 삼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까? 누구도 모를 일이지만 가능성이 높아보이진 않는다. 모토로라노키아, 그리고 소니를 반추해 보자. 왕좌에 앉아봤던 기업마저도 수성이 결코 쉽지 않은 게 이 정글같은 IT 시장이다. 아이리버보다 성장 가능성과 안정성 모두 훨씬 높아보였던 이 기업들도 추풍낙엽처럼 쓸려가고 말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막을 내릴 때가 됐다’라고 가볍게 인사하기엔 아쉬운 뒷맛이 많다.

자본금 3억 원, 직원 7명의 벤처 제조기업이 창사 5년만에 세계 최강의 기업과 맞대결할 만큼 성장한, 드라마틱했던 성공기.

회사의 패착이라기보다는 시대의 물결이 그들을 무릎 꿇게 만들수 밖에 없었다는 비장미 가득한 처절함.

그리고 그때의 주머니에 쏙 들어가던 세련된 디자인의 아이리버가 가져다 주었던, 애플과는 또 다른 모습의 감성.

이제 인사를 할 때다. 아듀, 아이리버.

▲아래의 '드림어스'라는 사명이 남았지만, 우리에게 '아이리버'는 위 사진의 심플한 MP3플레이어의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사진제공=아이리버, 드림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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